시스템과 공공리더십… 너무도 후진적인 우리 사회
정부도 소비자도 제값 안 낸 채 서비스만 요구… 이중적 행태 당연시
정치-재화시장 정상화 없이 제2 세월호-메르스 못 막는다
미국 독일 등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하다가 한국에 잠깐 들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세 번 놀란다. 첫 번째는 인천공항, 지하철, 화장실, 빌딩 숲, 병원시설, 의료기기, 인터넷 등 하드웨어 수준이다. 선진국보다 나은 점이 수두룩하다. 대체로 돈과 기술로 만들 수 있고 참고할 만한 선진 사례도 있다. 그러니 중국이 결심하면 단번에 추월해 버린다.
두 번째는 물가, 임금, 소비 수준이다. 통신요금 식료품비 스타벅스 커피값 등은 너무 비싸서, 병원비 공공요금 이미용료 먹자골목 밥값은 너무 싸서 놀란다. 대·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은행 등 규제산업 종사자의 임금은 너무 높아서, 청년들이 많이 하는 편의점 식당 알바 기간제 근로자 등의 임금은 너무 낮아서 놀란다. 이 비밀은 웬만큼 안다. 비싼 요금 뒤에는 높은 임차료, 후진적인 유통망, 독과점이 있고 싼 요금 뒤에는 엄청난 공급 과잉, 청년실업과 정부의 무식한 공공요금 통제가 있다. 지인들의 높은 소비 수준의 비밀도 안다. 외국 유학을 했거나 취업에 성공한 사람의 지인 정도라면 대체로 중상층 이상인데, 낮은 세금(소득세와 연금보험료 등)에 힘입어 가처분 소득이 엄청 높다. 좋은 시절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하여 부동산이 부풀려 준 부와 정부나 노조가 만든 지대(rent)와 한국 특유의 과시적 소비성향도 깔고 있다.
진짜로 놀라는 것은 세 번째다. 시스템과 공공리더십의 지독한 후진성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고 기겁했다. 기업주(유병언), 종업원(선장), 병원, 의사, 환자 등은 너무 몰상식 무원칙하게 행동했다. 대통령과 재난대응 실무 책임자는 너무 무능했다. 시스템의 뼈대인 혜택-부담(요금, 세금), 위험-보상, 권한-책임, 직무-실력의 균형이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은 이 후진 시스템 문제는 덮어두고 기업의 탐욕과 변칙을 탓하고 대통령과 정부의 중대한 실책이나 괴담으로나 떠도는 범죄 혐의를 찾는 데 주력했다. 야당도 시스템의 문제를 도덕과 범죄의 문제로 바꿔서 소모적 정쟁을 주도했다.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안목 있는 교민조차도 이 수수께끼는 풀지 못하고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돌아갔다. 사실 조선 말기 수준의 악덕이 창궐하는 곳은 대체로 혜택-부담, 위험-보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시장(가격)을 내친 곳이다. 대신에 예산 및 권좌 쟁탈전에 익숙한 정치(예산 폭탄론)와 안정, 면피, 기득권 편향의 관료적 규제가 판치는 곳이다.
단적으로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도 정부와 소비자가 제값 안 내고 해운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전염병 대처 등) 공급을 요구하면서 터진 문제다. 메르스 사태가 100배쯤 악화된 것도 시장과 제대로 된 공공을 내몰고, 병원의 변칙(과잉 검사·진료, 장례식장, 비급여 병실 등)에 기대어 시스템을 돌린 후과다. 기득권의 대변인들이 모여 밀고 당기는 국회 상임위나 관료가 지배하는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이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 합리적 자원 배분(가격 책정)을 할 수는 없는 법! 그 결과가 응급실의 도떼기시장화, 다인실 과다, 가족 간병 의존, 감염병 환자용 병실의 태부족이다.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관료 리더십도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아서 일 시켜보고 자르든지 계약 연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고시, 공시로 뽑아서 정년보장-자동 호봉승급-순환보직이니 전문성이 생길 수도, 중간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하기야 정치부터 비전과 소명을 뒤로하고 양당 독과점에 기댄 채 예산, 권능(시행령 등), 권좌만 탐하니, 좋은 시스템과 합리적 예산, 인사가 될 리가 있나! 결국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계속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니 토호(기득권)와 관의 독점, 배제, 억압, 약탈이 판치던 조선 말기가 재현될 수밖에! 정말 공직·권좌와 소명·실력을 연결하는 정치 시장과 비용·가격과 편익·품질을 연결하는 재화 시장 정상화가 너무나 절실하다. 시장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창의와 신명이 분출하여 중국이 좀체 따라잡지 못하는 신화(한류)를 숱하게 만들었다. 공직자를 감별, 선출, 임용, 평가, 보상, 퇴출하는 제도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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