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에 이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내년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됩니다. 이에 정부는 민간기업이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재계는 취업규칙을 더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임금피크제로 줄인 인건비를 청년 고용에 쓸 수 있다는 거죠. 반면 노동계는 노사 합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노동계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처럼 ‘임금피크제 줄소송’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양측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贊]임금피크제 노조 동의 불필요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임의로 작성해서 적용하는 기업 내 규정을 말한다. 보수규정, 복무규정 같은 것들이 모두 취업규칙이다. 그러나 다수의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규정이므로 처음 만들 때와 개정할 때 근로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에 따라 근로기준법은, 기존 근로조건의 개정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즉 단체성에 의한 통제를 받도록 규정했다. 이것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도이다.
하지만 불이익 변경 제도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경직되게 운용되다 보니 시대와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취업규칙을 운영할 수 없게 하는 장애요인이 되었다. 경영계가 취업규칙 개정 절차를 유연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불합리함 때문이다.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 제도의 엄격성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대법원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그 변경에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유효하다는 판례 법리를 내놓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정년 60세 적용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번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된 이후 임금체계 개편과 임금피크제 도입 및 실시 여부는 개별 기업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결국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개정하는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큰 틀에서 정리하기 위해 5월 노동연구원이 공청회를 계획했지만 노동계는 공청회 개최를 물리적으로 저지했다.
정년을 연장한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무조건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재직 기간이 늘어나고 생애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설사 불이익 변경이라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르면 그러한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강행 법규에 따라 고용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저하되는 근로자의 생산성에 맞추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업의 존속을 위해, 신규 인력 채용을 위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013년 고령자고용법이 통과될 때 국회 속기록을 보면 조문상의 ‘임금체계 개편 의무’의 의미가 ‘정년 연장을 통한 임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여야가 다 인식하고 임금체계 개편 등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나타나 있다. 정년 연장 때에 임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미 국회 차원에서도 인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임금 조정의 최소한이 임금피크제이다.
나아가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입법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도 미시적이고 단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근로자의 생애소득과 근로 제공 가능 기간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도 정년이 60세로 법제화되어 있고 직무·성과급제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가 폭넓게 도입되어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힘든 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 전문가에게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사가 활로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노사 간의 자율적 합의가 충분히 확산되기를 기다려서 입법했기 때문에 정년 60세 시행과 관련해서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노조도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유지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급함과 편 가르기에 매몰돼서 무언가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反]노사 합의 없는 도입은 위법
임금은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 중 하나다. 노동 조건은 노사가 대등하다는 원칙 아래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 미국의 노동운동가 리오 휴버먼의 지적처럼 노사 대등 결정은 노동조합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노동규율과 노동조건에 대해 작성한다. 모든 사업장의 집단적 노동조건은 취업규칙으로 구체화된다. 노조가 있는 10% 남짓한 사업장의 구체적인 노동조건도 마찬가지다. 물론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취업규칙보다 상위 규범인 단체협약이 중요 내용을 규정한다. 단체협약 역시 노조와 사용자가 대등하게 합의한 결과물이다.
노동조건의 대등 결정 원칙은 취업규칙을 정할 때 노동자 또는 노조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바꿀 때는 과반수 노동자 또는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쟁취한 성과물이다. 노동자는 개개인으로는 약할 수밖에 없지만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해 노동조건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전제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살펴보자.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보장형과 정년연장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임금 액수의 직접적인 감소뿐만 아니라 평균 임금과 퇴직금 등 부가적인 노동조건의 저하를 불러온다. 정년보장형은 기왕의 정년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깎는 것이므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당연히 과반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가 필요하다. 또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에 따르는 정년 보장과 낮은 초임이라는 계약을 암묵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정년이 되기 훨씬 전에 퇴출하거나 정년 보장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이중의 임금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년연장형도 정년 연장과 임금 삭감의 유불리가 섞여 있어 종합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법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과반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10% 정도이며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 수준이다. 정부가 수년간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해 왔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왔는데도 이렇다. 하던 일도 멍석 깔아 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알아서 잘하는데, 누가 하라고 하면 그마저도 싫어하거나, 불신하는 사람이 그런다면 거꾸로 튄다는 말이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임금피크제에 딱 들어맞는다. 이는 노사 관계의 원리이자 삶의 이치이다.
노동자들은 정년 60세를 자신들이 획득한 권리 혹은 기득권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오래전에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맞바꿨던 사업장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후회하고 있기도 하다. 그게 현실이다. 임금피크제는 어떤 유형이든지 주관적 객관적 불이익 요소가 있어 노동조건 저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위법이다.
국내 노사 관계는 있는 법도 안 지키고, 합의하라고 해도 뭉개거나, 합의한 내용도 지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극히 예외적인 판례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합의할 필요가 없다고 부추기는 것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보는 것처럼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다. 게다가 현 정부의 의도로 볼 때 취업규칙의 일방적 불이익 변경의 봇물이 터져 일반 해고로까지 확대된다면 근로기준법 체계의 전면 와해와 최악의 노정 및 노사 갈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단체협약으로 임금피크제의 일방적 도입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정부 정책 강행의 피해자는 노조라는 최후의 안전망도 없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는 90%의 노동자에게 집중될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 구조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라고 노동계가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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