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접하는 수많은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가족이나 상사, 동료, 고객 등으로 서로 항상 엮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이 ‘관계’가 큰 고충이 될 수도 있다.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사람, 실속 없이 위태하게 버티는 사람, 남의 공을 가로채는 얌체 같은 사람…. 그들과의 틈바구니에서 고충은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계의 밑바닥에는 ‘인정’이라는 ‘괴물’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존재감’ 혹은 ‘가치’를 느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직장생활에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정말로 내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일까. 이에 대해서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정의 욕구’란 생리적, 안전, 사회적 차원을 넘어 자존을 지향하는 고도의 심적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고도의 욕망이다. 이런 점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까칠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위험한 목적론적 발상의 함정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 같은 심리는 ‘나’의 영역에 그 사람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어떤 운전자가 방향지시등(깜빡이)을 켜지도 않고 불쑥 들어왔다고 치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 운전자를 향해 삿대질을 해 화를 풀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운전자는 자기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상대방은 상관없다는 듯 딴짓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 운전자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거나 설령 인식한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만큼 진지하진 않다. 그런 사람을 나의 영역에 끌어들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무엇 때문에 비싼 밥을 먹으면서 불편한 되새김질을 하는 것인가? 쏟아내면 풀릴 것 같지만 실없어 보이고 자신의 치부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 ‘고르디아스 매듭’을 떠올리자.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실타래는 단칼에 끊어버려야 한다.
맹금의 왕 독수리라 하더라도 떼로 달려드는 까치를 당해낼 수는 없다. 일대일로 까치 떼를 상대하다가는 지쳐 죽는다. 독수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까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숨쉬기도 버거운 높은 창공으로 솟구쳐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를 생각해 보라. 눈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그런 연약한 존재다. 따라서 상대방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최고의 방법은 판단하기 전에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다.
미움 또한 감정이지만 쓰레기와 같은 감정이다. 상대방을 미워할 게 아니라 그들의 편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내 편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을 만들지는 말자. 그것이야말로 훗날을 도모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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