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in 서울’ 안 부럽네… 인생대학 미래설계학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소리없이 강한 지방대

방학 중인 1일 오후 충남 아산시 선문대 기계ICT융합공학부 부설 ‘차세대반도체기술연구소’에서 이 학부 김호섭 교수(왼쪽)와 박상우 씨(오른쪽)가 조립된 초소형 전자현미경을 진공챔버에 장착하기 전에 상태를 점검하고있다. 초소형 전자현미경은 반도체 검사에 꼭 필요한 주요 장비로 김 교수는 2006년 세계인명사전 마퀴스 후즈후에 등재된 초소형 전자현미경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다. 선문대 제공
방학 중인 1일 오후 충남 아산시 선문대 기계ICT융합공학부 부설 ‘차세대반도체기술연구소’에서 이 학부 김호섭 교수(왼쪽)와 박상우 씨(오른쪽)가 조립된 초소형 전자현미경을 진공챔버에 장착하기 전에 상태를 점검하고있다. 초소형 전자현미경은 반도체 검사에 꼭 필요한 주요 장비로 김 교수는 2006년 세계인명사전 마퀴스 후즈후에 등재된 초소형 전자현미경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다. 선문대 제공
선문대 기계ICT융합공학부 박상우 씨(3학년)의 아버지는 반도체 컨설팅 회사 사장이다. 박 씨는 아버지를 도와 회사를 키우기 위해 선문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외국 대학이나 한국의 유명 대학이 아닌 지방대에서 반도체 전문가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박 씨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 씨의 1차 목표는 대학원에 진학해 반도체 검사 사업에 필요한 전문성을 기르는 것. 이를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 지도교수인 김호섭 교수를 도와 밤샘 연구를 한다. 박 씨는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4년제 대학도 들어가기 힘든 성적이었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반도체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격려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가 다니는 선문대 기계ICT융합공학부는 정보디스플레이+정보통신+기계공학 전공을 합쳐 올해 문을 열었다. 입학정원이 이 대학 전체 입학정원의 10%가 넘는 매머드 학부다. 학교가 위치한 충남 아산시 인근에는 삼성 탕정디스플레이, 아산 현대자동차 등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회사들과 이들에 납품하는 1, 2차 벤더회사들이 밀집해 있다. ‘2015 충남지역 산업진흥계획’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올해 67조 원의 매출과 9만4000명의 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부에는 교수 42명이 장비값만 130억 원이 넘는 20개의 첨단 실험실습실을 갖추고 인재를 양성 중이다. 올해 학부로 통합된 3개 학과의 2014년 평균 취업률은 83%이고 이 중 특성화 분야 취업률은 97.1%로 학부생 거의 전부가 취업에 성공했을 정도다. 졸업생들은 별도 교육 없이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원광대 토목환경공학과 전시영 교수는 올 1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수학책’인 ‘기초수학’를 만들어 2학년 강의에 활용하고 있다. ‘기초수학’는 수학 실력이 모자라 공대의 기초인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나자 어떻게든 이를 막아보고자 전 교수가 스스로 만든 책. 정년이 2년 반밖에 안 남은 교수가 책을 만든 것은 순전히 ‘선생이 팔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학과 교수들은 ‘어떤 학생이 와도 최선을 다해 가르쳐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어 낸다’라는 생각뿐이다.

같은 대학 소방행정학과는 전국 대학 중 소방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과다. 이 학과 최혜린 씨(2학년)는 “학교 다니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 씨는 “나도 소방공무원을 꿈꾸고 있다. 교수님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하면 소방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공부 말고도 맘 놓고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학과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원광대 소방행정학과가 소방공무원의 ‘메카’가 되기까지에는 교수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학과는 공무원시험의 필수 과목을 학과 정규 커리큘럼으로 편성해 학과 공부 따로, 공무원시험 따로 하는 비효율을 극복했다. 일주일마다 시험을 치르고,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거나 강의 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감점을 하는 엄격한 학사관리도 면학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교수들은 모두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으며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학생 지도에 힘쓰고 있다. 정기성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시대이지만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학생들은 예외”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2014년 11월 태국 랑싯 지역에서 우석대 구효진 유아특수교육과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학생 및 아동발달센터 연구원들과 함께 덴버를 이용해 발달검사를 하고 있다. 유아특수교육과는 한국화된 유아특수교육의 중국 및 동남아시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우석대 제공
2014년 11월 태국 랑싯 지역에서 우석대 구효진 유아특수교육과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학생 및 아동발달센터 연구원들과 함께 덴버를 이용해 발달검사를 하고 있다. 유아특수교육과는 한국화된 유아특수교육의 중국 및 동남아시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우석대 제공
교수들의 열정은 지방대생들이 갖는 열패감을 없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석대 유아특수교육과 소엘리 씨(4학년)도 ‘지방대 열패감’을 떨친 지 오래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유아특수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다. 소 씨는 “처음엔 나도 우석대를 선택한 것에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교수님들이 열정적으로 유아특수교육이 왜 사회에 필요한지 일깨워 주셨다. 특히 4학년 1학기 때 이리유치원에서 한 달간 실습을 하며 내가 가야 할 길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소 씨의 스승인 구효진 교수의 꿈은 유아특수교육 전문대학원을 설립해 유아특수교육 전문가를 양성하고 사회 공헌과 지방대 발전에도 힘을 보태는 것이다. 2018년이면 대학 입학정원이 수험생보다 많아지는 현실에서 전공 전문성을 통해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구 교수는 2009년 설립한 대학 부설 ‘아동발달지원센터’를 통해 전임 연구원 17명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18명을 중심으로 자신이 개발한 SIT(Self-Imagery Training program·심상훈련프로그램) 도구를 이용해 취약계층 영·유아 아동을 대상으로 발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SIT를 이용한 서비스를 통해 35억 원의 수입과 65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SIT 도구가 발달지연 영·유아의 조기 정상화뿐 아니라 영재성이 있는 아동들에 대한 균형 있는 발달지원에도 효과적이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 교수는 “한국화된 유아특수교육의 해외 진출은 우석대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지방대의 활로를 해외에서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해외 진출은 대학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영산대 인도비즈니스학과는 인도 진출을 위한 맞춤형 커리큘럼을 통해 인도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2008년 설립 후 벌써 9명의 국내 인도법인 지사장을 배출했을 정도로 인도에 특화된 학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이운용 교수는 “글로벌 시대에서 인도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이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40세쯤 되면 인도 전문가로서 ‘귀하신 몸’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학과는 3학년 2학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도 현지에서 ‘필드학기’를 운영 중이다. 인도를 다녀온 이민경 씨(3학년)는 “작년 하반기에 인도 뭄바이의 KOTRA 무역관에서 6개월간 조사팀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인도의 경제 현황, 대표 산업 흐름, 수입과 수출 등의 통상 정보를 배우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경험 덕분에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도 지방대학 유망 학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4년부터 5년간 ‘대학특성화사업(CK-1, 2)’을 통해 지방대 80개교, 수도권 28개교 등 108개 대학 432개 사업단에 1조2000억 원 이상을 배정한다. 이 중 지방대에 1조 원 이상을 지원한다. 대학들은 연간 3억∼7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사업단에 속한 학과들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 사업의 취지는 ‘될 만한 학과 중심으로 대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라’는 것. 선정된 특성화사업단의 69%는 융복합학과로 구성돼 있다. 융복합이 대학 교육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성화우수학과로 선정된 건양대 창의융합대학의 융복합 교육에 주목하는 것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학 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 2012년에 만든 이 대학 창의융합대학은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에서 혁신 담당 전무로 일했던 최현수 학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학과별 전문성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걸 만들어 내려면 융합밖에 길이 없다”며 융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대학 커리큘럼은 1학년부터 문·이과 공통과목 8개와 각 학부 전공 8개 등 16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등 융복합 과목이 대부분이다. 1학기가 1개월인 ‘1년 10학기 체제’를 채택하고 있고, 두 달간의 방학 때는 ‘집중학기’로 운영하며 국내외에서 현장실습을 시킨다. 이런 융합교육 덕에 미대를 지망했던 융합디자인학부 2학년 이연재 씨는 창의수학을 제일 잘하는 10명 안에 들었고 소프트웨어도 곧잘 짜는 융복합 인재로 거듭났다. ‘미대생이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게 생소하긴 하지만 이 대학에서는 흔한 일이다. 최 학장은 융합대학의 성패 여부는 10년 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쯤이면 세상이 융합교육을 받은 인재들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학과를 살리기 위한 교수들의 노력과 정부의 정책 의지는 학생들이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14학번 신입생들이 전주 향교에서 ‘향음주례’ 체험을 하고 있다. 특성화 우수학과인 이 학과는 전국 유일의 고고학 발굴실습장과 고전 번역 호남권 거점 연구소인 ‘한국학고전연구소’ 등 뛰어난 학습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다. 전주대 제공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14학번 신입생들이 전주 향교에서 ‘향음주례’ 체험을 하고 있다. 특성화 우수학과인 이 학과는 전국 유일의 고고학 발굴실습장과 고전 번역 호남권 거점 연구소인 ‘한국학고전연구소’ 등 뛰어난 학습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다. 전주대 제공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최선아 씨(2학년)는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약탈문화재 반환과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 과감히 이 학과를 선택했다. 그만큼 이 학과의 교육 내용과 비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 학과는 ‘역사해서 벤츠 타자’라는 모토로 차별화된 역사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인문학의 위기를 보란 듯이 극복하고 있다. 학과의 2014년 취업률은 87.5%로 최상위권. 교수들은 특성화학과와 특성화우수학과로 선정되면서 받은 지원금을 최대한 활용해 등록금보다 많은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돈을 벌려면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낫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최 씨는 지난 학기 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되돌려 받았을 뿐 아니라 150만 원의 특성화장학금과 50만 원의 근로장학금까지 받아 교수들의 바람을 실천했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서울 대진고 교사)는 “대학보다는 학과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위권 이하 학생들이 전공을 찾아 대학에 간다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이들의 성공은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는 한국 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는 전국의 베테랑 진학교사 100여 명이 2013년 결성한 단체로 상위 15%가 아닌 나머지 85%를 위한 진학지도에 교육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본다.

동남아 진출에 노력 중인 신라대 국제학부의 강경태 교수는 “100세 시대에 대학에 들어오는 지금의 학생들은 대학 졸업 후 6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 시대 흐름에 맞는 전공 선택만이 직업 선택은 물론이고 이후의 삶의 질도 결정할 것이다. 대학 이후의 삶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대학에서 얻어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이제 단순한 점수나 사회적 평판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전략적,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며 그 선택이 긴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이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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