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분리불안 뒤집어 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3시 00분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치료받기 시작했대. 심리 치료도 받고 미술 치료도 받고.”

다섯 살 난 아이가 자폐 증상이 있는 것 같다며 한동안 걱정하던 지인 부부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아이가 또래보다 말이 느리고 유치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검사를 받는다고 했었다. 아이에게 아무 문제가 없길 바랐는데, 결국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니 마음이 짠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반전이었다.

“애가 아니고 엄마가.”

출산 후 1년 만에 복직했던 아이의 엄마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남의 손에 맡겨 키우던 아이를 직접 유치원에 등하원시키면서 동네에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겼다. 12월에 태어나 체구가 작고 같은 반 아이들보다 말이 늦은 아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요즘은 유아 자폐가 많다더라, 다섯 살 넘으면 고치기 힘들다더라, 아이가 문제가 있는데 부모가 손놓고 있다가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더라…. 이런 말들이 엄마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검사 결과 아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에게 있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고, 무의식적으로 특정 이웃 몇 명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아이를 자신의 틀에 맞추려고 하는 성향이 진단됐다. 상담사는 엄마에게 차라리 직장에 나가거나 본인만의 일을 만들라고 권했다. 부모가 이런 성향이 있으면 아이랑 붙어 있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고 조언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무척 좋아졌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복직하는 워킹맘들의 고민 중 하나가 분리불안이다. 유아들의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은 생후 7∼8개월이 지난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는 것 자체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교육학에서는 성장기 아이들이 의존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증상으로도 설명한다. 대부분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 대해 일종의 분리불안을 겪는 경우다. 내가 꼭 아이 곁을 지켜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아이를 성장 단계에 맞게 놓아주어야 할 때를 놓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부모가 놀이터에서 보초를 서며 친구와의 관계를 살핀다거나, 아이가 단체생활에서 조금 힘들어하면 원인을 따져보기 전에 단체생활 자체를 피하게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 생기면 부모가 나서서 이를 해결해버리는 식이다. 험한 세상에서 내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의 발로일 수 있지만, 아이 스스로 새로운 상황과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한 원로 교수님께 부부가 모두 바쁘게 일을 하면서 외동아이를 잘 키워낸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둘째를 키우는 마음으로 키웠다”며 웃었다. 자녀를 둘 이상 키우는 부모들은 대부분 첫 아이 때 사사건건 조바심을 내며 이런저런 걱정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둘째부터는 좀 더 대범하고 무심하게 아이를 키우게 된다. 그래서 둘째 키우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 아이는 이를 극복해 갈 준비가 돼 있는데 부모가 지레 걱정에 빠지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가 아닌 부모가 분리불안을 겪는 것은 아닌지,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자라고 있는지 수시로 돌아볼 일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분리불안#유아 자폐#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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