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큰어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 고 박병배 선생이다. 대전 출신인 그는 4·5·7·8·9대 국회의원, 민주통일당 총재 대행 등을 지냈다. 2002년 작고하기까지 서울 장훈고 법인인 장훈학원과 돈운학원의 대전예고, 서대전 여고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200억 원 상당의 땅을 대전시교육청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가 ‘큰어른’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좌우명으로 삼았던 ‘궁구막추(窮寇莫追·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 다루지 말라’는 좌우명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도리이자 배려가 배어 있다.
최근 권선택 대전시장의 인사 행태를 보면 ‘궁구막추’라는 말이 무색하다. 취임한 지 1년이 갓 넘어선 그는 유감스럽게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1심 형량이 워낙 무거워 비관적인 전망도 많다. 권 시장이 자숙하고 시정에만 전념해야만 하는 이유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항소심을 불과 며칠 앞두고도 산하 기관장뿐만 아니라 시장 권한 내에 있는 말단까지 인사권을 거침없이 행사하고 있다. 임기 6개월을 남겨둔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을 예고 없이 사퇴시키는가 하면, 주가조작을 통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긴 혐의로 국회의원직까지 박탈당한 한 인사를 정책특보로 임명했다. 도시철도공사 주변에선 “양복도 걸치지 못한 채 내의 차림으로 쫓겨났다”는 말이 나온다. 정책특보는 2010년 소액주주 446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패소할 정도로 ‘공공’의 원한을 산 인물이다.
하지만 취임 초기부터 시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경청(傾聽)’을 모토로 삼았던 권 시장은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앞서 임명한 몇몇 산하기관장도 전문성이 떨어져 조직 운영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퇴직 간부와 말단 계약직 직원까지 시장 입김 때문에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권 시장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인사로 인한 짐은 고스란히 153만 대전시민 몫이라는 점이다. 시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傾聽) 시장’이 아닌, 시민 목소리를 너무 가볍게 듣는 ‘경청(輕聽)시장’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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