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해결할 휴대전화 감청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8일 03시 00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국회서 발목 잡혀
野 “불법 사찰 악용” 강력 반대… 전문가 “범위 명확히 해 통과시켜야”

지난해 2월 미국 수사 당국은 세계 최대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을 13년 만에 멕시코의 한 해변 호텔에서 체포했다. 이중 삼중의 경호와 비밀리에 움직이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구스만의 범죄조직에 대한 휴대전화 감청을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2012년 우리나라에선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수사당국은 2002년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과 연계된 범죄 혐의자가 입국한 뒤 탈레반의 ‘자금세탁업체’로부터 거액을 송금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혐의자가 유유히 출국할 때까지 수사당국은 손도 쓰지 못한 채 구체적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혐의자의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스마트폰 해킹 논란이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은 여야의 기 싸움에 묻혀버린 상태다.

현행 통비법은 ‘국가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으면 합법적으로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통신업체가 감청설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 감청 설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 이미지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통신업체가 실제로 설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테러, 간첩, 마약 등 강력사건이 발생해도 휴대전화를 감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국회에는 이미 여러 개의 통비법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지난해 1월 통신업체가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이 낸 개정안은 휴대전화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감청할 수 있도록 했다.

통비법 관련 법안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17대 국회에서 정부의 추진으로 발의됐지만 “불법 사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시민단체와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폐기됐다. 지금도 여야는 정치적 공방만 벌이고 있을 뿐 통비법 개정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2012년 전략사이버사령부 창설 이후 사이버전 인력이 불과 2, 3년 만에 기존의 3000여 명에서 6000여 명 수준으로 늘었다. 특히 공격을 전담하는 전문 해커가 1200명을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감청에 대한 합법적 통제 범위를 명확히 하되 불법 탈법 행위는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감청에 대한 ‘투 트랙’ 접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합법 감청은 허용하되 적절한 통제를 담보하도록 여야와 국정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통신비밀보호법#감청#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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