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57·사진)이 21일 법정에서의 공개 증언을 통해 “(박 대통령의 옛 측근인) 정윤회 씨가 나를 미행했다는 설과 관련해 측근인 전모 씨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나는 원래 정치권력에 관심도 없고 심하게 말하면 냉소적”이라며 정치권력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21일 오전 10시 6분 서울중앙지법 509호 법정.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핵심 증인인 박 회장이 법관 출입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다. 네 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하다 구인영장까지 발부된 후에야 이뤄진 증인 출석이었다. 감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색 셔츠 차림의 박 회장은 ‘EG그룹’이 새겨진 서류봉투를 들고 증인석에 앉았다. 앞서 재판부에 “일반인과는 다른 통로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증인지원 절차를 신청한 박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10분경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증인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출석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열린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53)과 박관천 경정(49·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재판에 출석한 박 회장은 “공직기강비서관실, 혹은 누구라고 특정한 것은 아니고 검찰에 (부탁)할 수는 없는 거니까 청와대와 관련된 사람(정 씨)이 있으니 한 번 확인해보라는 뜻이었다”며 정윤회 씨의 미행설에 대한 확인을 지시한 적이 있음을 시인했다.
박 회장은 “청와대 유출 문건 17개를 본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전 씨를 통해 내용 정도만 적힌 A4용지 1, 2장짜리를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저를 사칭하는 사람이 꽤 있다. 청와대와 관련된 내용은 없고, 나를 사칭한 사람들에 대해 확인하는 수준이었으며 주로 구두로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그중 ‘정윤회 문건’이 유일하게 기억이 난다며 “내가 정 씨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 (여기저기서) 준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문건을 본 적이 있는데 정식 문건이었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자신이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부부 관리는 조 비서관이 맡게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공개했다. 대선 캠프에서 박 회장 가족을 담당했던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것을 알고 “새로운 사람에게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부부를 담당하는 창구를 조 비서관으로 단일화했으면 좋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부탁했다는 것. 이에 박 대통령이 당시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지시해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혔다. 그는 “나를 이용해서 뭘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나는 원래 정치권력이나 이런 것에 관심도 없고 심하게 말하면 냉소적인데 (조 전 비서관은) 그걸 잘 알고 있는 분이다”고 말했다. 그 순간 피고인석에 앉은 조 전 비서관은 감정이 격해진 듯 안경을 벗고 물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박 회장은 박 경정이 인사 청탁을 했느냐는 물음에도 “저한테 그런 얘기해도 되지도 않는다는 거 잘 아실 텐데…”라며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이어 “조 비서관 측에서 대통령 친인척은 행동을 조심해야 된다고 일러주면서 집사람(서향희 변호사)도 변호사 일 웬만하면 접었으면 하더라”며 “쉬는 김에, 여담이지만 덕분에 쌍둥이도 낳았다”고 말해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90분간의 심문을 마친 뒤 박 회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 과정, 사건 등에 대해 느낀 점이나 생각을 적었다”며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한 뒤 다시 법관 출입문으로 퇴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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