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 씨(25)는 가수를 꿈꿨다. 고교 시절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생이 됐지만 경쟁에 밀려 데뷔하지 못했다. 군 전역 후 3년간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지만 고된 노동 강도를 이기지 못했다. 보험설계사로 직업을 바꿨지만 실적을 올리지 못해 스스로 보험에 가입하는 일만 늘었다. 결국 빚만 3000만 원이 쌓여 생계가 막막해졌다. 4월 11일 오후 11시 반경 서울 마포대교로 갔다. 112로 “자살하겠다”고 말하고선 난간에 몸을 기댔다. 15m 아래 검은 한강 물을 바라보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마포대교의 숨은 뜻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설득했다. 정 씨처럼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다 마포대교를 찾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112생명수호팀이 3월부터 최근까지 140명의 자살 시도자를 분석한 결과다. 분석 결과 ‘수요일 오후 10시경 생활고에 시달리는 20대 남성’이 가장 많았다. 여의도지구대는 ‘절망의 다리’로 불리는 마포대교에서 일어나는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월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
연령별 조사에선 20대가 56명으로 가장 많았다. 10대와 30대가 각각 24명으로 30대 이하가 총 104명으로 전체의 74.2%였다. 남녀 비율은 비슷했다. 안영전 112생명수호팀장(39·경위)은 “젊은 세대가 취업, 결혼 등으로 고민이 많다 보니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자살이란 극단의 상황으로 내몬 이유로는 생계 문제(25.2%)가 가장 많았다. 주부 박모 씨(60·여)는 자신이 앓고 있는 파킨슨병으로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손모 씨(60)는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고 가족까지 자신을 떠나자 마포대교 위에서 몸을 던지려 했다. 이어서 우울증(24.4%), 가정 불화(21.6%), 연인과의 이별(13%) 등이 이유였다. 지구대 관계자는 “젊은 세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하기 힘들어서인지 결혼 직전 헤어진 남녀가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전했다.
시간대는 오후 10∼11시가 26명으로 가장 많았고, 0시∼오전 1시(16명), 오전 1∼2시(15명) 등 대부분 늦은 밤 시간이었다. 요일별로는 수요일이 27명으로 가장 많았다. 자살 시도자의 주거지역은 서울 영등포구가 가장 많았지만 멀리 경남 창원, 전남 여수 등에서도 마포대교까지 올라왔다.
112생명수호팀 경찰관들은 작성한 리포트를 바탕으로 자살 시도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에 자살 시도가 많아 더 긴장해서 근무한다. 안 팀장은 “수요일 밤 홀로 고개를 숙이고 걷거나 울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한다”며 “마포대교를 전담해 순찰하면서 지난해에 비해 자살자도 3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여의도지구대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 삶을 시작하도록 돕는 방법도 추진 중이다. 사채 빚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에게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안내하면서 빚 정리를 도와주기도 했다. 우울증이 심해 두 번이나 마포대교를 찾은 여성은 구청 정신보건증진센터에서 치료받도록 해줬다. 김형렬 여의도지구대장은 “자살 구조도 중요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다시 하지 않도록 원인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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