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경기 용인시에서 운행 중이던 한 태권도장 승합차의 문이 열리며 양모 양(6)이 떨어져 숨졌다. 승합차를 몰던 관장은 다른 아이들을 도장에 내려주느라 아이를 30분 가까이 방치했다. 아이는 안전띠를 매지 않았고 차량에는 승하차를 지도할 동승자도 없었다. 사고 두 달 전인 1월 ‘세림이법’이 시행됐지만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올 들어서만 이런 통학차량 사고로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
○ 통학차량 안전관리 ‘극과 극’
22일 오후 용인의 학원가를 다시 찾았다. 건물 2개동에 영어학원, 합기도장 등 어린이 교육시설 10여 개가 밀집해 있었다. 학원 앞 도로에는 차량 앞뒤로 신호등 모양의 경고등을 설치한 노란색 통학차량들이 쉴 새 없이 아이들을 태워 옮겼다.
“차에 타면 안전벨트부터 꼭 매세요.”
근처 영어학원 교사 김진희 씨(39·여)는 아이들을 통학차량에 태우며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아이들이 매지 않으려 하면 “안전벨트를 매야 차가 출발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며 어르고 달랬다. 김 씨는 승하차 지도 교사가 아니지만 이날 일손이 모자라 직접 나서서 아이들을 챙겼다. 김 씨는 “세림이법 시행과 태권도장 사고 여파 때문에 승하차 지도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됐다”고 했다. 운전자 박모 씨(57)는 “사고 후 도색과 시설 개조를 마친 차량이 50%가량 늘어난 것 같다”고 달라진 풍경을 전했다.
이 학원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학원이나 체육시설 통학차량의 상당수는 여전히 불안한 운행을 계속하고 있다. 근처의 한 검도장 통학차량 운전자는 아이 3명을 태운 뒤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운행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차량에는 경고등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건물 내 한 음악학원은 도색을 하지 않은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통학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운전자 이모 씨(65)는 “학원장이 세림이법에 관심이 없어 신고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통학차량 운전자는 2년에 한 번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 씨는 5년째 한 번도 받지 않았다.
○ 일부는 단속 유예기간 연장돼 논란
학원과 체육시설의 통학차량 신고가 저조한 이유는 시설 측의 준비 부족 탓이 크다. 여기에 신고가 불가능한 지입차량(학원 등 시설이 아니라 개인이 소유)이 많은 것도 한 이유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20일 지입차를 학원 시설장과 차주 공동소유로 바꾸면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경찰도 구조변경신청서를 제출한 통학차량을 당분간 단속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차량이라도 일단 양지로 끌어내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속을 코앞에 두고 신고 및 단속 규정이 바뀌어 현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직 구조 변경을 하지 못한 시설이나 운전자들은 안도하지만 학부모들은 “계속되는 봐주기로 단속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지입차량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학원 등이 운전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보통 차량을 도색하고 경고등, 승하차용 발판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만∼200만 원. 최근에는 20만∼30만 원씩 웃돈도 내야 한다. 운전자들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액수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9년째 통학차량을 운행하는 김모 씨(45·여)는 “많은 학원이 구조 변경 비용을 운전자에게 떠넘긴다. 통학차량으로 변경된 차를 갖고 있어야 계약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법은 사람들의 의식 개선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학원 시설장과 운전자, 학부모의 의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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