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고려대를 졸업한 박상혁 씨(28·회사원)에겐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인근에 위치한 ‘영철버거’다. 대학 근처에서 2년간 자취했던 박 씨는 매일 한 끼 식사를 영철버거로 해결하다시피 했다. 졸업한 뒤에도 모교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종종 영철버거에 들렀다. 박 씨는 “단돈 1000원에 햄버거와 콜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에겐 구내식당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고려대 명물’로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던 영철버거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극심한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이달 초 가게 문을 닫은 것이다. 대표 이영철 씨(47)가 2000년 리어카 노점에서 처음 햄버거를 만든 지 15년 만이다.
이 씨는 단돈 1000원짜리 길거리 햄버거를 앞세워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해 영철버거를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시켰다. 한때 가맹점이 80개까지 늘어나면서 ‘노점 신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라는 학력과 가난을 이겨낸 사업가로 주목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나중에는 사업의 기반이 된 고려대 측에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는 등 나눔과 기부도 꾸준히 실천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들어 조금씩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 1000원을 고수한 영향이 컸다.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의 공격적 마케팅과 웰빙 바람을 탄 고급 수제버거 전문점의 등장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졌다. 2009년 고급화 전략으로 4000원이 넘는 수제버거를 내놨지만 반응은 신통찮았다. 결국 경영난에 적자가 누적되면서 체인점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이달 초 본점인 안암동 매장도 폐업했다.
소식을 접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려대생 곽혜윤 씨(26·여)는 “영철버거 사장님이 학교에 기부도 하고 축제 때마다 먹을 것도 챙겨주는 등 학교에 애정이 많았는데 (폐업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업 전략의 실패가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의견도 나왔다. 고려대생 이모 씨(25·경제학과 4학년)는 “영철버거의 가격이 오르면서 학생들이 별로 찾지 않게 됐다”며 “비슷한 먹을거리가 많이 생긴 상황에서 학생들의 취향을 잘 맞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도태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안암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작은 상권에 비슷한 가게들이 몰리면서 경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며 “인근 자영업자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영철버거까지 결국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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