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중소기업 영업사원 유모 씨(56)는 2010년 가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들의 치마 속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 전부터 줄곧 유 씨는 “압수된 휴대전화 속 연락처 등은 데이터로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유 씨는 “영업사원에게 연락처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고 재판장에게 읍소하는 편지까지 보냈지만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앞으로는 유 씨처럼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정보를 돌려받지 못하거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휴대전화와 같은 저장매체 자체를 압수당하는 사례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와 관련된 전자정보만을 압수 대상으로 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압수자 등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전자정보 압수수색 영장 실무 운영안을 도입한다고 28일 밝혔다.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이번 운영안은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기업 데이터베이스(DB) 등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타 일선 지방법원은 물론이고 검찰의 기업 비리 수사 관행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새로운 운영안은 컴퓨터나 외장하드 등 저장매체 자체를 압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다. 수사기관은 현장 사정으로 컴퓨터 등을 밖으로 반출할 경우 관련 정보만 압수해야 한다. 또 압수한 전자정보 상세 목록을 작성해 압수 대상에게 건네고, 압수 목록에 없는 정보는 즉각 삭제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영장에 담아야 한다는 점도 포함됐다. 범죄 혐의와 무관한 정보는 수집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압수된 전자정보에서 다른 범죄 혐의와 관련된 정보가 발견되면 수사기관은 법원에 별도로 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개선된 실무운영 방안을 수사기관이 따르지 않고 압수한 전자정보의 경우 재판부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보고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게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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