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市산하단체에 설선물-화환… 기부문화 흐리는 ‘미꾸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구멍 뚫린 기부금 관리]일부 기부금단체의 ‘일탈’

국내에서 기부금을 모금하는 단체는 법으로 정하는 법정기부금단체 100여 곳,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지정기부금단체 2900여 곳, 의료법인이나 종교단체 등 설립과 동시에 당연 지정되는 당연기부금단체 등 3만 곳 정도다. 기부금단체가 되면 기부자는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기부금단체는 모금액의 15%까지 운영경비로 사용할 수 있다. 기부금단체는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법인세와 상속세를 면제받는다. 대부분의 기부금단체는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 기부금단체들은 이런 혜택을 누리면서 법적 의무는 지키지 않는 등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 허위 영수증 발급으로 세액공제에 악용

부산의 N의료법인은 지난해 상속세법과 증여세법 위반으로 국세청에 적발돼 9700여만 원을 추징당했다. 공익사업을 하는 기부금단체는 증여나 상속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단, 출연 재산을 3년 안에 전부 공익사업에 써야 한다. 국세청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위반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 법인은 출연키로 한 재산을 기간 내에 사업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광양의 J시민단체는 13억여 원어치, 경북 경주의 K사찰도 17억 원어치의 허위 영수증을 발급했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지난해 국세청이 처음으로 공개한 ‘불성실 기부금 수령 단체’는 102곳에 달했으며 이 중 93곳이 종교단체다. 허위 영수증 발급은 실제 받은 기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은 것처럼 부풀려 영수증을 발급해 주는 것.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은 기부자들은 이를 근거로 연말정산 등에서 세액공제를 부풀려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종교단체나 병원 등 설립과 동시에 당연 지정되는 기부금단체들은 이 같은 위법 사항이 발각되더라도 세액공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정 절차나 관리감독이 허술하다 보니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받고 사실상 영리단체처럼 운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기부금단체로 지정받은 뒤 단체를 재산 상속 수단으로 악용하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특정 단체 후원에 기부금 쓰기도

법인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되려는 비영리법인은 ‘공익을 목적’으로 해야 하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기부금을 사용해야 한다. ‘불특정’에 대해서는 세부 규정이 없지만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만을 후원하기 위한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법 해석이다.

하지만 대전에 있는 N단체는 기부금 상당액을 대전시 산하 특정 단체를 위해 사용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대전시 산하에 있는 한 단체를 위해 설 선물 등 224만 원, 정기공연 뒤풀이 식대 354만 원, 추석 선물 등 117만 원, 축하화환 등 31만 원, 홍보비 등 329만 원 등 총 45회에 걸쳐 1100만 원을 썼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모금한 기부금은 반드시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익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기부금을 사용했다면 법을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설립 8개월이 지나도록 의무 규정인 홈페이지가 없는 곳도 있다. 지난해 9월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된 L재단은 현재까지 홈페이지가 없다. 홈페이지가 없으면 기부금단체로 지정될 수 없다. 기부금단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단체의 활동 내용과 기부금 사용 명세를 공개해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부금단체 지정 당시 홈페이지가 없을 경우 지정이 안 된다”며 “어떻게 지정될 수 있었는지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 정치인 지원 의혹도 받아

특정 정치인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는 단체도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경북 포항시 북구에 위치한 D연구소는 지난해 12월 경북도에 의해 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이 연구소의 전신은 1995년 설립된 한국정책연구원이며, 설립 당시 원장은 현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다. 이 연구소가 위치한 포항시 북구는 이 의원의 지역구. 현 연구소 소장은 이 의원의 전 비서관이며, 연구실장은 이 의원 보좌진 출신이다. 또 연구소 임원진 다수가 이 의원의 전·현직 비서관, 보좌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연구소는 지역 현안을 연구하는 순수 연구기관으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기부금단체 신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월 현재 이 단체 역시 지정기부금단체 의무사항인 회계 명세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서류상 공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돼 있어 승인했다”며 “구체적으로 특정 정치인의 싱크탱크 또는 사조직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지정기부금단체 추천 요건과 재지정 요건에 따르면 지정기부금단체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의 한계를 단체나 운영자 명의의 직접적인 선거운동 금지로만 한정하고 있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택 nabi@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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