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교과 융합 등이 특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다음 달 총론과 교과 교육과정 고시를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개된 총론과 교과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 “학습 부담이 줄지 않고, 학교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새 교육과정에 걱정을 드러냈다. 수시 개정 체제 도입 이후 벌어지는 잦은 전면 개정, 줄어들지 않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 대학 입시 연계와 관련한 논의 없는 교육과정 개정에 대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개선 방향을 들어봤다.
○ 문제점 분석해 반영할 시차는 둬야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이 자주 바뀌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잦은 개정으로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수업의 질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분석할 최소한의 시간은 두고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존의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에 또다시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문제점 분석 없는 졸속 개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왜 잘 안되는지에 대한 연구 없이 개정에 나서면서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며 “제도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잘 안되는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정치적 독립성을 갖추면서도 항구적인 교육과정 논의 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정권의 입맛대로 교육과정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고, 연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학회는 ‘국가 교육과정 포럼 운영 종합보고서’를 통해 “정치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국가 교육과정 논의 기구가 필요하고, 개정 과정에서 타당성 및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의 교육과정 관련 기구가 상호 작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개정 주기가 짧다는 문제 제기는 부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무조건 ‘자주 바꾸면 안 된다’는 식으로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핵심이고, 개정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방향이 적절한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 성취 기준별로 시간 분석해 교과 구성을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학습량 경감’은 빠지지 않는 목표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르치고 배워야 할 내용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는 교과 이기주의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특정 내용을 가르칠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임상적 근거’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본 결과 평균 5시간이 걸렸다면 이 단원에 5시간을 배정해야 한다는 것.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 “현재는 교육과정에 내용을 나열하고 교사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많은 분량을 소화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라며 “성취 기준별로 필요한 학습 시간을 분석해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에 맞춰 교육내용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용을 줄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단 많은 양을 제시한 뒤 일부만 필수요소로 정하는 방식으로는 학습량 경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것은 다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 김 대표는 “학생이나 교사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고등학생 중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 60%에 달한다는 것은 교육과정이 잘못된 것을 의미한다”며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렵고,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교육과정·수능 동시에 고려해야
초중고교 현장의 최대 관심사는 수능인데,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배우게 되는 학생들은 아직 어떤 수능을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교육과정은 곧 정해지지만 바뀌는 수능은 2017년에나 공개되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수능을 연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딜레마다. 과목 간 통합을 통해 고등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교육과정 개정의 목표인데, 객관식 문제 중심인 수능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합과학을 수능에서 평가하면 암기 과목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수능 평가 과목에서 제외하면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과 수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교육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뒤로 미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 개편을 별개로 추진하면서 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교육과정은 당연히 입시와 연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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