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공주 ‘황새바위 성지’ 35년만에 시민 품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십자가 동산 등 성역화 사업 마무리… 부활성당- 묵주 기도길 등 조성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로 만들어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충남 공주시 ‘황새바위’ 성지의 성역화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부분적으로 개방했던 공간이 신도는 물론 시민들에게 활짝 열렸다. 공주시 금정동의 성지는 참혹했던 순교의 역사를 극복한 듯 고향 마을 뒷동산처럼 정겨운 모습으로 꾸며졌다. 가치 있는 공간일수록 종교를 넘어 모든 시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전담 사제의 신념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십자가 동산이 국내에서는 처음 조성됐고 부활성당은 순교미술의 백미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순 신부가 황새바위 성지의 맨 위쪽에 조성한 십자가 언덕에서 신도들이 가져다 놓은 십자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을 재현했다. 그들에게 십자가 언덕은 ‘간절한 갈망의 성취’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최상순 신부가 황새바위 성지의 맨 위쪽에 조성한 십자가 언덕에서 신도들이 가져다 놓은 십자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을 재현했다. 그들에게 십자가 언덕은 ‘간절한 갈망의 성취’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35년 만에 시민에게 안긴 ‘황새바위’ 성지

황새바위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내포(충남 서해안과 내륙 일부)의 사도’라고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가 처형된 것을 비롯해 100년 동안 337위의 순교자를 낳았다.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데다 사형 권한을 가진 충청감영이 위치해 많은 천주교인들이 여기서 처형됐다. 황새들이 많이 서식했다는 황새바위와 그 아래의 제민천에서 벌어진 피의 역사를 한국천주교회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황새바위에서 사학(천주학) 죄인들을 처형할 때, 맞은편 공산성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순교자들의 머리는 백성들에 대한 경고로 나무 위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황새바위 앞 제민천에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은 금강을 피로 물들였다.”

순교자 가운데 이국승 바오로와 김원중 스테파노 등이 지난해 8월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복자 칭호를 허가하는 교황의 공식 선언)됐다. 당시 성지 정비가 늦어 교황을 맞진 못했으나 대신 아시아주교대회가 여기서 열렸다. 1980년 시작된 이 성지의 성역화 사업은 2008년 공주교동 본당에서 성지가 분리돼 최상순 전담 사제가 부임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시민공원 같은 성지로 탄생

성지는 천국의 계단을 상징한 순교탑과 순교자 337위를 모신 무덤경당,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열두 개 빗돌, 순교자의 모후상, 4000여 점의 백도자판 벽화로 이뤄진 부활성당, 십자가 언덕, 묵주 기도길 등으로 조성됐다. 순교탑과 경당은 모두 건축가 김원 씨 특유의 정연한 입방체로 구축됐다.

성지 맨 위의 십자가 언덕은 로마 유학 시절 성지순례에 올랐던 최상순 신부가 리투아니아에서 본 것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현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십자가 언덕을 만들어 자유를 갈망하면서 옛 소련 공산 치하에서 벗어났다고 믿고 있다. 황새바위의 중턱을 휘도는 1km가량의 묵주기도길은 신도에게는 순례의 길, 시민에게는 치유(힐링)의 길이다. 조부수 화백이 5년 동안 기도로 빚어낸 4000여 점의 백도자판 벽화들로 이뤄진 부활성당에서는 순교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국내 성지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에 있는 황새바위 성지는 휴식 공간 마련과 자유로운 운영방식으로 시민공원 같은 분위기다. 순교탑에 오르는 언덕길의 몽마르뜨 카페에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최 신부가 커피를 뽑아 실비에 제공한다. 성지 건축 봉사를 맡은 한호성 씨는 “시민들이 야외 제대(祭臺)에 돗자리를 펴고 아무렇게나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신도 입장에서는 난감한 풍경이지만 시민들이 그렇게 편한 느낌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성지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 신부는 “위압적이지 않고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황새바위 성지를 향후 성지 조성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논문까지 나왔다”고 소개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공주#황새바위 성지#성역화 사업#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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