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를 담은 다기를 기울여도 금방 흘러내리지 않았다. 어른 엄지보다 조금 큰 앙증맞은 찻잔에 농도가 짙은 차 대여섯 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걸쭉한 만큼 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녹차 특유의 씁쓰레함 뒤에 깔끔한 단맛이 느껴졌다. 진한 녹차의 대명사인 농차(濃茶)다. 일본에서는 농차 다섯 방울가량이 10만 원에 이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물론 향과 맛, 빛깔을 제대로 냈을 때 그렇다.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옛 화전마을인 ‘솔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는 이기영 씨(51)를 만났다. 임시 거처 주변으로 집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다실을 짓느라 어수선했지만 그윽한 차향을 어쩌지는 못했다. 이 씨 농차는 중국, 일본에서 찾아온 차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제주 야생초로 만든 그의 차는 중국인들의 엄지를 세우게 만들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제주다운 차이기 때문이다.
○ 수제 차 명인
그가 만든 제주야생초차와 녹차는 ‘효월차’라는 이름이 붙는다. 해인사 스님이 지어 준 이 씨의 법명인 효월(曉月)은 새벽달을 의미한다. 새벽달을 보기 위한 부지런함과 맑은 기운으로 제다(製茶)에 매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효월에 새겨진 뜻에 따라 제다에 인생을 걸었고 결국 ‘수제차 제다 명인’이라는 평을 이끌어 냈다. 지난달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13회 국제차문화대전’에서 이 씨의 제다 시연장은 인기 만점이었다. 차 문화 확산을 위한 그의 제다 시연은 지금까지 2000회 이상 이뤄졌다.
경남 하동 출신인 그의 제다 인생 역정은 지리산 쌍계사에서 시작됐다. 쌍계사에서 고시 공부를 하면서 매일 마신 커피로 속이 더부룩한 날이 끊이지 않았다. 대안을 찾던 중 인근 할머니가 만드는 녹차를 흉내 내 코펠에 찻잎을 넣고 볶아 마셨다. 1∼2년 정도 하고 나니 손에 익었다. 1988년부터 고시생들에게 차를 팔기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다에 발을 들였다. 문제는 제다 기법. 제다의 초창기나 다름없었던 당시에는 일부에서 비밀스럽게 기법이 전수되는 실정으로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전국의 유명하다는 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법을 전수받으려 했지만 번번이 마지막 핵심단계에서 무산됐다. 오기가 생긴 그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제다에 도전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홉 번 찌고 말리는 전통 제다 방식인 ‘구증구포’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 덖음에서 500도 내외의 고온에서 작업을 해야 독특한 향과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순식간에 찻잎이 타 버릴 듯한 엄청난 고온에서도 덖어 내는(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힌다는 뜻) 제다는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그의 차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다 1990년대 중반부터 ‘효월차’라는 이름을 달고 사찰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법정 스님(1932∼2010)의 인연도 이즈음 시작됐다. 효월차가 독특하다는 소식을 듣고 법정 스님이 직접 지리산으로 찾아온 것이다. 법정 스님은 이후 효월차를 곁에 두고 두고두고 마실 정도로 ‘팬’이 됐다. 법정 스님이 투병할 때는 몸에 좋다는 야생초를 찾아내 차를 만들어 보낼 정도로 두 사람은 각별했다.
○ 제주 야생초 차에 매료
국내 수제차 분야를 평정하다시피 하며 승승장구하던 이 씨는 2004년 홀연히 제주로 이주했다. 안정된 삶을 마다하고 감행한 제주 이주는 안팎에서 심한 갈등을 만들어 냈다. 2002년 제주에서 여행을 하는 도중에 제주조릿대(볏과 식물)로 제다 시연을 한 것이 계기였다. 제주의 야생초가 녹차 대용 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주 이후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모두 섭렵할 정도로 차에 적합한 야생초를 찾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야생초의 성질에 따라 찌고, 데치고, 고온에 덖었다.
감귤잎, 뽕잎, 단풍잎, 감국, 겨우살이, 방풍, 두릅, 순비기 잎, 민들레, 쑥부쟁이, 예덕나무 잎, 녹나무 잎, 질경이, 익모초, 삼백초…. 그의 손길을 거쳐 차의 면모를 갖춘 야생초가 120여 종에 이른다. 2010년부터 차병원 안티에이징센터에서 독점 구입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제주의 야생초는 육지와 사뭇 다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화산 폭발로 이뤄진 토질 등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성분이 다소 다른 야생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야생초를 창조적으로 재발견했지만 ‘제주 풀 뜯어서 팔아먹는다’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려야 했고 제자의 배신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제주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큰아들 인엽 씨(23)는 가업을 잇기 위해 한국농수산대에 입학해 올해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힌 터라 제다에 능수능란하다.
이 씨는 2017년 ‘제다 인생 30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야생초 차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은 책을 출간한다. 제다학교를 설립해 차 문화를 확산시키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제주의 야생초 100여 종을 심어놓은 곳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덖고 데치며 차의 우수성을 체험하는 ‘제다 페스티벌’ 개최를 꿈꾸고 있다.
“제주 야생초 차는 몸과 마음의 병을 미리 막고, 이겨 내는 힘을 갖고 있어요. 건강을 잃은 이들에게는 자연 치유의 첫걸음이 될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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