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처럼 만난 친구의 비분강개에 술자리가 격해졌다. 5년 남짓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다 올해 봄 귀국한 그는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자녀들에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보여주겠다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대중교통과 민박여행을 택했다. 극성수기에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인파야 피할 수 없었겠지만 여행지 곳곳에서 마주친 한국 피서지의 수준 낮은 민낯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짐짝 취급당하는 불친절한 식당 서비스와 선뜻 젓가락을 들기 힘들 정도로 위생 상태가 의심스러운 음식,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악취, 남들의 조용한 여행을 방해하는 야밤의 고성방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허접한 서비스에 걸맞지 않은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지갑을 열고 다니는 봉’이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피서문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쉼 없는 푸념에 휴가도 다녀오지 못한 나는 밤늦도록 술을 마셔줘야 했다.
휴가지의 불쾌한 경험이 한 개인에 국한된 일일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2년 반 동안 접수한 국내 여행 관련 민원을 지난주에 발표했다. 1000여 건의 민원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불만이 ‘이해할 수 없는 바가지요금’이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공간이 없어 돌아 나오는데도 주차비를 내야 했다거나 신용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택시기사와 실랑이 끝에 택시비만큼 담배를 사다줘야 했다는 기막힌 사연도 있었다. 불친절(29.2%)과 위생불량(18.8%)도 휴가지의 전형적인 불만 사례로 꼽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20, 30대 직장인의 절반이 “바가지 북새통이 싫어 집에서 빈둥빈둥 아무것도 안 하는 ‘홈캉스’를 즐기겠다고 응답했다”니 수긍이 갈 만하다.
피서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표준화되지 못한 우리의 질 낮은 서비스는 일상생활에 만연해 있다.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얌체 상혼에 소비자들은 늘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혹시 내가 속고 있지 않은지 의심이 일상화된, 이른바 ‘사회적 탐색비용’이 큰 사회다.
늦은 저녁 어렵사리 잡아 탄 택시 안에서 ‘내가 잠든 사이 혹시 돌아가지는 않을까’ 실눈을 뜨고 미터기를 쳐다보기 일쑤다. 좀 싸다 싶어 손님들이 몰리는 음식점에는 혹시 다른 밥상 위에 올린 반찬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저런 꼴 보기 싫으면 모범택시를 타거나 호텔 레스토랑에 갈 일이지만, 1만, 2만 원에도 벌벌 떨며 물건을 들었다 놓는 서민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한국 사회가 피곤한 이유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불신 만연 탓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탐색비용을 낮추자고 정부가 나서고 법으로 규제하는 것도 촌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촘촘히 짜놓은 법망도 속이고자 하는 마음은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신뢰사회는 서로 배려하는 시민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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