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인천 연안부두 앞 해상을 지나던 예인선에서 유출된 폐유가 내항으로 밀려들자 인천해경이 바지선 위에서 흡착포를 이용해 기름 찌꺼기를 수거하고 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제공
“지금 연안부두 수협공판장 앞바다에 검은 기름띠가 넓게 퍼졌어요.”
지난달 25일 오전 9시경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에 해양 오염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해경은 방제정 2척과 해양오염방제과 직원 20여 명을 곧바로 사고 해역에 출동시켰다. 현장에선 약 1500m²에 걸쳐 검은색 유막이 떠다니고 있었다. 기름띠 확산을 막기 위해 곧바로 오일펜스가 설치됐고, 기름을 제거하기 위한 흡착포가 바다에 뿌려졌다.
다음 순서는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것. 직원들은 현장에서 기름을 채취해 중부지방해경본부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바다에 몰래 기름을 버린 선박을 찾아내기 위한 수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인천 중구 연안부두를 드나드는 선박은 하루 평균 200척이 넘는다. 모든 선박을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유지문(油指紋·Oil Fingerprint)’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지문처럼 기름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다.
유지문 분석은 여러 화합물로 구성된 기름의 성분을 파악한 뒤 용의선상에 오른 선박의 기름과 동일한지를 가리는 것. 보통 선박 연료로 쓰이는 경유나 중유는 원유 생산지와 공정, 탱크에 남아 있는 기름과의 혼합 정도에 따라 성분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의 지문이 서로 다르듯이 같은 종류의 기름도 여러 조건에 따라 고유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연안부두 앞바다에 퍼진 기름 성분을 분석한 결과 100t급 이상 예인선이나 화물선 등이 사용하는 중유와 윤활유가 섞인 선저폐유(선박 기관실 바닥에 고인 기름) 120L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해경은 항적도를 통해 당일 신고 시간 전후로 사고 해역을 지나간 선박 가운데 중유를 연료로 사용한 100t급 이상 선박 10척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이어 수협공판장 근처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대상을 5척으로 좁혔다.
해경의 끈질긴 추적 끝에 사고 당일 오전 7시 20분경 인천항을 출발해 오염 해역을 지나간 부산 선적 100t급 예인선 A호가 지목됐다. A호에 남아 있던 폐유 찌꺼기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해상에서 채취한 기름과 성분이 같았다. A호 기관실에선 폐유를 바다에 버리기 위해 사용한 호스와 수중 펌프 등이 발견됐다. A호 선장과 기관장은 기름 유출을 시인했다. 해경은 해양환경관리법 위반 혐의로 A호 기관장을 불구속 입건했다.
11일 인천해경에 따르면 올해 1∼7월 폐유를 바다에 몰래 버렸다가 유지문 분석을 통해 꼬리가 잡힌 선박은 모두 14척. 지난해 같은 기간(6척)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선박에서 발생한 폐유를 허가받은 폐기물 처리 업체에 보내 정상적으로 처리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처럼 바다에 몰래 버리는 선박이 늘고 있는 것. 김형만 해경본부 해양오염방제국장(58)은 “100t 이상 선박에 보관하는 오염물질 수거 기록을 정기적으로 확인한 뒤 폐유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때는 해당 선사를 처벌하고 있다”며 “유지문 분석 기법은 기름으로 인한 해양 오염뿐 아니라 강이나 토양 오염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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