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마지막 눈물까지 닦아드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5일 03시 00분


[광복 70년]
위안부 다큐 ‘더 라스트 티어’ 만든… 재미교포 2세 크리스토퍼 리 감독
“정치적 구호보다 따뜻한 관심을”

다큐 ‘더 라스트 티어(The Last Tear)’ 포스터.
다큐 ‘더 라스트 티어(The Last Tear)’ 포스터.
열여섯 꽃다운 청춘이었다. 사촌 언니와 바닷가로 조개를 잡으려 집을 나선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일본군에 붙잡혀 강제로 배에 오른 소녀들이 내린 곳은 중국 만주. 하루 수십 명의 일본 군인을 상대해야 하는 ‘지옥’ 같은 시간이 7년이나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11년 만에 고향 땅을 밞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도망치듯 고향 마을을 떠난 박숙이 할머니(93)는 이제 아흔을 넘긴 노인이 됐다.

재미교포와 국내외 대학생들이 박 할머니의 이야기를 53분짜리 영상에 담았다. 재미교포 2세인 크리스토퍼 리 감독(51·사진)이 이끄는 다큐멘터리 팀과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티어(The Last Tear)’가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했다. 15일에는 워싱턴과 중국 상하이(上海), 대만 타이베이 등지에서 동시 상영된다. 한국에서는 17일 대구에서 첫선을 보인다.

리 감독은 14일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색을 배제하는 대신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여러 나라 대학생들이 박 할머니들을 만나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다큐를 준비하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죄하더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여생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정치적 구호보다는 후손들이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큐 팀은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박 할머니가 살고 있는 경남 남해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수요집회가 열리는 일본대사관 등을 찾아다녔다. 박 할머니가 고초를 겪은 중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 등지의 위안부 관련 장소도 일일이 방문했다.

리 감독은 “상하이에는 과거 위안소로 쓰던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그 건물을 통째로 한국으로 들고 와 후손들이 직접 보게 하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11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리 감독은 “어릴 땐 한국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밖에 몰랐다”며 “커가면서 뿌리에 대한 갈증이 컸고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리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는 박 할머니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짜 소원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남해군 남해읍 숙이공원에서는 박 할머니를 위해 건립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위안부#할머니#크리스토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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