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 교육현장에서 ‘학습 요리’가 주목받는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도서관에서 진행된 요리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두부 쿠키를 만드는 모습(왼쪽)과 경기 한얼초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서 ‘과학 요리’ 체험을 하는 학생들.
‘마들렌아 부풀어라. 얍!’
1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한얼초등학교. 여름방학 방과 후 학교 수업이 한창인 이 학교 과학실 칠판에는 마법 주문처럼 보이는 수업 주제가 적혀있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3∼6학년 학생 15명은 조개 모양의 소형 빵인 마들렌을 만들어보는 요리 실습을 하면서 이산화탄소의 성질에 대해 배우는 이른바 ‘과학 요리’ 수업에 참가했다.
“반죽에 들어간 베이킹파우더에는 ‘이산화탄소’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요. 이 이산화탄소가 오븐에 들어가 열을 만나면 납작했던 반죽이 부풀어 올라 빵이 되는 것이죠. 이산화탄소가 어떤 성분인지 알아볼 또 다른 실험을 해볼까요?”
강사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베이킹파우더를 산성 물질인 식초와 반응시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다. 학생들은 그 이산화탄소로 풍선을 부풀리는 실험을 해보며 반죽이 빵이 되는 원리를 파악했다. 수업에 참가한 이 학교 4학년 기강민 군은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지만 이산화탄소에 대해선 오늘 처음 알게 됐다”면서 “집에서 빵을 만들어보면서 실험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업을 진행한 박미나 아동요리지도사는 “학생들은 요리를 단지 재밌는 놀이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과학 과목에 등장하는 특정 개념이나 원리를 요리로 쉽고 재밌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초등 교육현장에서 ‘학습 요리’가 뜨고 있다. 요리하면서 국어, 과학, 미술, 사회 등 교과목 관련 지식을 넓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초등생 학부모가 자녀를 요리 수업에 참여시킨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사는 워킹맘 A 씨는 매주 주말 초등 4학년과 6학년 두 자녀와 함께 요리 수업에 참가한다. 주방용품 기업, 백화점 문화센터, 유기농 식재료 매장 등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요리 수업에 참가해온 A 씨는 “요리 수업에 참여하고 온 날에는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스케치북에 요리 그림을 그려보고 요리 미니어처 클레이로 만들기 활동을 한다”면서 “단호박 고르곤졸라 피자, 과일주스 등의 음식을 형형색색 재료를 사용해 만들고 곧바로 먹어본다. 아이들이 일반적인 미술 수업보다 더 큰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각종 요리 수업에서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아동요리지도강사들은 “요리를 과학, 사회, 국어 등의 교과목과 연계할 수 있고 아이들이 그 과정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높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 부천에서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최정윤 아동요리지도사는 “팥빙수를 만들어보는 간단한 요리를 하며 온도계를 사용해 얼음의 상태변화를 관찰하고 얼음이 왜 녹는지 배울 수 있다”면서 “컵밥을 만들어보면서는 과학 과목에 등장하는 지층에 대해 교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진흙을 닮은 고구마층, 자갈과 비슷한 시리얼층 등 다양한 재료들을 층층이 쌓은 뒤 그 가운데 작은 과자나 젤리 등을 집어넣어 화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카레, 케밥, 브리토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만들면서는 요리의 유래를 들으며 세계사 상식을 넓힐 수 있다. 요리 재료를 의인화한 동화책을 읽은 뒤 그 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해보면서 독서에 대한 흥미도 키울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서대문도서관에서 초등생을 대상으로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조영주 강사는 “최근에는 바게트를 활용해 요리하면서 바게트와 비슷한 모양의 거북선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역사 요리’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녀와 유대감 높이고 인성교육까지
요리 수업은 학습적인 효과 외에도 자녀의 인성교육, 정서발달, 영양지도 등에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 △또래친구나 부모와 요리를 만들어보며 협동심을 기르기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어보며 편식 문제를 해결하기 △순서에 따라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정서를 발달시키기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어머니 B 씨는 초등 5학년 자녀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집에서 함께 요리한다. B 씨는 도토리묵 무침, 으깬 감자 샐러드 등 비교적 간단한 요리를 자녀와 함께 한다. 요리를 할 때는 물이 끓으면 재료를 넣고 조미료를 넣는 등 순서가 있다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친다. B 씨는 “순서에 따라 요리를 함께 하면서 산만했던 아이가 예전보다 인내심과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학습 요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부모가 많아지자 최근 일부 호텔은 숙박권과 요리 수업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상품도 내놨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회사원 C 씨는 최근 한 호텔에서 진행된 ‘아빠와 함께하는 쿠킹클래스’에 초등 1학년 딸과 함께 참여했다. 호텔에서 초빙한 유명 셰프의 요리강좌를 들은 뒤 셰프의 지도를 받아 소그룹별로 쿠키, 컵케익 등을 자녀와 함께 만들었다.
C 씨는 “딸이 수업이 끝난 뒤엔 먼저 친근하게 다가왔다. 딸과 함께 요리를 해보면서 정서적으로 더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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