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독서 동호회 ‘묵독파티’의 정기모임이 열린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동호회원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묵독파티 제공
이달 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 평소 같으면 한산할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카페 안에는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테이블 10여 개에는 벌써 20여 명의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이하게 손님들은 모두 책 한 권씩을 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여러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책 종류는 소설부터 자기계발서, 사회과학서적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저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가끔씩 ‘사각사각’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웃음소리나 작은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묵독파티’라는 독서모임의 정기모임(정모) 현장이다. 참가 방법은 간단하다. 1주일에 한 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공지를 확인한 뒤 정해진 장소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갖고 오면 그만이다. 여느 동호회처럼 자기소개를 할 필요도 없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모 때는 눈인사만 하는 것이 이 모임의 규칙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무(無)교류 동호회’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동호회라면 회원 간 친목을 강화하기 위해 이름이나 나이, 소속, 관심사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무교류 동호회는 이런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술자리 같은 뒤풀이도 철저히 배제된다. 오직 취미활동 자체를 즐기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묵독파티는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얼핏 정모 분위기가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오히려 독서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 중이다. 모임 회원인 김모 씨(32·여·직장인)는 “다른 동호회에선 대화하다 출신 학교나 직장을 얘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며 “나와 남이 비교돼 괜히 감정이 상할 때가 있는데 이곳은 책 읽는 것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무교류 동호회의 종류도 다양하다. ‘SRC 서울’은 1주일에 두 번씩 한강 둔치를 달리는 모임이다. 1시간 남짓 달리는 과정에 회원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달리기가 끝난 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 바로 해산이다. 우성호 씨(29)는 “지금까지 다섯 번 나왔는데 아직 친해진 사람은 없다”며 “다른 스포츠 동호회는 활동 후 함께 술을 마시는 일이 많고 그러다 만취해 실수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 모임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좋다”고 말했다.
다양한 취미활동을 바라는 개인을 연결만 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프렌트립’은 양궁, 래프팅처럼 홀로 즐기기 어려운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활동하게 도와준다. 개인이 활동을 희망하는 의견을 올리면 다른 개인들이 보고 동참하는 방식이다.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배제한 활동 중심의 커뮤니티”라며 “가입 조건을 따지는 등의 이유로 다른 동호회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우리 사이트를 많이 찾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고향이나 출신 학교, 직장 같은 소속감이 주는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들이 사생활에서만큼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교류 동호회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민여가활동조사’ 결과에서 20대 응답자의 51.6%가 여가활동의 목적을 ‘개인의 즐거움’이라고 꼽았다. 반면 ‘대인관계’라고 답한 20대는 6.4%에 그쳤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단순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끈끈한 인간관계를 쌓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협력관계도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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