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당신 잠깐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여름휴가는 금토일, 토일월 3일간 시행합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한 중소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돌린 문자메시지입니다. 사실상 휴가는 하루뿐이지만 주말을 붙여 선심이라도 쓰는 양 3일처럼 꾸민 문자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되면서 ‘헬조선(Hell+朝鮮·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댄 신조어)식 여름휴가’라며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캬! 하루를 삼일로 만드는 기적!” “휴가는 휴일에 가야 제맛!”이라고 조롱하면서도 휴가에 인색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씁쓸해했습니다.

한국 직장인은 통상 1년에 15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15일을 모두 쉬려는 직장인은 ‘개념 없다’는 눈총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서는 15일은커녕 5일도 쉬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30대 미혼남성 A 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4일만 쉬었습니다. A 씨의 소망은 꽃피는 봄이나 눈 내리는 겨울에 유럽이나 미국으로 2주짜리 휴가를 떠나보는 겁니다. 입사한 이후 4년 내내 여름에만 3, 4일 휴가를 주고 “푹 쉬다오라”며 생색내는 회사에 진절머리가 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별 수 있냐며 오늘도 스스로를 달랩니다.

법이 정한 유급휴가를 다 쓰지 못하면 남은 일수를 계산해 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 회사는 주말까지 휴가일수에 포함시킵니다. ‘월화수목금’으로 5일 휴가를 내도 회사는 ‘토일월화수목금토일’ 9일을 쉬었다고 고용노동부에 보고하죠. 설이나 추석연휴가 노사합의를 통해 유급휴가일수에 포함되는 건 어느새 당연해졌습니다. 정작 평일에 쉰 건 며칠 안 되는 거 같은데 연말에 휴가 기록을 보면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처럼 소진휴가일수가 불어나 어느새 15일을 다 보낸 것처럼 기록돼 있기도 합니다.

법정 휴가를 무시하는 회사보다 더 무서운 건 자기 검열에 익숙해진 우리 자신입니다. 사실 휴가 15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가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휴가를 자발적으로 5일씩 끊어 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름휴가가 앞뒤 주말을 붙여 최대 9일로 고착화되다 보니 SNS에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났다며 자랑하는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동남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국에 배낭 메고 돌아다니며 ‘한 달 동안 휴가 내고 아시아 탐방에 나섰다’는 유럽인들을 보며 ‘역시 유럽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건가’라며 신세한탄만 할 뿐입니다.

변화는 누군가가 용기 있게 나설 때 시작됩니다. 대기업 사원 B 씨는 올해 5월 회사 역사에 남을 26일짜리 휴가를 썼습니다. 5월 공휴일인 근로자의 날(1일·금), 어린이날(5일·화), 부처님오신날(25일·월)에다가 15일 휴가를 몰아넣어 1일부터 26일까지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휴가 결재를 올리자 상사가 “휴가를 길게 가네?”라고 되물으며 은연중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거야 예상했던 일이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동기들마저 “네가 회사 기강을 망치고 있다”고 정색하며 비판한 건 충격적이었습니다. 동기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꼰대’가 돼버린 거 같아 씁쓸했다죠. 하지만 그 이후 몇몇 회사 동료가 7, 8월 여름휴가 때 2주씩 휴가를 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리 중 처음으로 용기 있게 바다로 뛰어들어 변화를 이끌어낸 ‘퍼스트 펭귄’이 된 거 같아 지금도 잘한 행동이었다고 여긴답니다.

일부 직장인은 휴가를 길게 쓰려다가도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리 오래 자리를 비우나’라며 본인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불안해합니다. 이런 경향은 직급이 높을수록 심해집니다. 윗사람들은 자신이 휴가를 오래 가면 수하들이 ‘무두절(無頭節)’ ‘어린이날’이라 여기며 일을 제대로 안 할까봐 걱정해 자리를 못 비운다는데, 사장이 휴가 오래 가서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긍심이 너무 강하면 휴가를 안 가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희한한 풍조가 생기기도 합니다.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에서는 “나 휴가를 하루도 못 갔다”는 말이 그만큼 중요한 사건을 많이 맡아 쉴 틈이 없다는 걸 우회적으로 자랑하는 거라니, 참으로 해괴한 조직문화입니다.

직장인 여러분, 당신 잠깐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갑니다. 시스템이라는 게 그리 허술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혹시나 ‘나 없으면 회사는 어쩌나’라는 사명감에 아직도 여름휴가를 가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신청하세요. 푸른 바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여름휴가#금토일#토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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