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찔끔 방화… 범인은 욕구불만 증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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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는 말한다]<8>범죄퍼즐 맞추는 프로파일러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행동과학팀 소속 프로파일러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행동과학팀 소속 프로파일러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지난해 11월 초 서울 강남구 대모산 일대에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모두 그해 10월 30일부터 11월 9일 사이에 발생한 것이었다.

불이 난 곳은 대부분 소나무 밑동에서 조금 올라간 부분이었다. 일부는 소나무 껍질 사이에 일회용 라이터가 꽂혀 있었고 주변에는 신문지나 휴지, 비닐봉지 따위가 불에 탄 채 나뒹굴었다.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흔적이었다.

이런 연쇄 방화의 흔적은 총 30여 곳. 주요 등산로에서 다소 벗어난 샛길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약 265m에 걸쳐 발견됐다. 대모산은 해발 293m로 야트막한 산인 데다 약수터도 있다. 근처에는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어 1일 평균 2000여 명이 찾을 만큼 인기가 많다.

마침 때는 늦가을로 바닥에는 바싹 마른 낙엽이 가득했다. 자칫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단서를 확보했다. 우선 범행 시간대가 일정하지 않았다. 오전 4시와 낮 12시, 오후 4시 등 불이 난 시간대가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매번 10곳 이상 연속적으로 불을 놓는다든지, 좁은 반경 안에 같은 방식으로 방화를 했다는 점도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게다가 많은 이가 다니지 않는 샛길을 따라 불이 난 점도 범인을 유추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다.

이런 단서들을 토대로 경찰은 방화범의 유형을 추론해 냈다. 등산객이 아닌 인근 주민으로 과시보다는 본인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동선 역시 주민들이 다니는 샛길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했다.

마침 범행시간 때마다 반복적으로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을 한 명 찾아냈다. 가벼운 일상복을 입은 50대 여성이었다. 경찰은 잠복 끝에 용의자 정모 씨(54·여)를 검거했다. 정 씨는 “가정생활의 불화로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대모산 연쇄 방화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처럼 범인을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행동과학팀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프로파일러다. 프로파일러는 경찰 등 수사기관 소속으로 각종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범죄 현장의 단서나 증거를 분석해 범행 의도나 용의자 정보 등을 추론하는 이들을 말한다. 국내에서 범죄 수사 과정에 프로파일링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발생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이후 범죄자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경찰 안팎에서 제기되면서부터다. 현재는 각 지방청마다 최소 1명 이상의 프로파일러가 배치돼 있다.

프로파일링 도입 초기에는 직감이나 심령술 등과 혼동하는 인식도 적지 않았다. “누가 범인인지 빨리 맞혀 보라”는 식으로 채근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일각에서는 외부에서 한정된 정보만으로 ‘범인은 30대 남성’이란 식으로 단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수사 방향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프로파일러들의 설명이다. 윤태일 서울지방경찰청 행동과학팀장은 “최근에는 프로파일링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다수 소개되면서 프로파일러를 올바르게 보는 인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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