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경 수협중앙회장 자격으로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과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의 수산물 가공공장과 수산물 시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중국 수산물시장 공략을 연구해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유에 따른 시장조사였다.
다롄과 옌타이(煙臺), 칭다오 등의 주요 어항들을 둘러보았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중국 어선단의 규모였다. 줄잡아 수백 척의 어선들이 항구에 도열해 있었다. 이 어선들을 보는 순간 ‘아, 이 배들이 서해로 들어오는 중국 해적선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더욱 놀란 것은 다롄에서 옌타이로 가는 비행기에서였다. 랴오둥(遼東) 반도 남쪽의 다롄에서 산둥 반도 북쪽의 옌타이로 건너가려면 보하이(渤海) 만 상공을 지나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보하이 만은 얼핏 봐도 색깔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산둥 성에서 만난 현지 수산업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 연해의 오염이 너무 심하다.” “(한국 측) 서해까지 가서 조업하는 것은 오염이 덜해서다.”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중국 어선들이 죽창과 손도끼로 무장하고 서해바다로 와서 불법조업에 나서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12일 톈진(天津) 항에서 대형 폭발이 일어났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올해도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극심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폭발사고 후 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이 보하이 만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톈진 항은 보하이 만의 하수구와 같은 곳이다. 또 톈진은 인구 1500만 명의 대도시로, 톈진 항이 있는 빈하이(濱海) 신구에는 세계적인 제조공장들이 입지해 있다. 이러니 생활하수와 공업용수 배출이 오죽하겠는가. 톈진 항의 유독물 폭발사고로 보하이 만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보하이 만 오염이 심해지면 다롄과 옌타이 등지의 중국 어선들은 기를 쓰고 서해바다로 건너와 불법조업을 벌일 것이다. 불법조업 중국 어선들의 규모와 폭력성은 우리의 장비와 자원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서해의 어족 자원 고갈은 더욱 심해지고 우리 영세 어민들은 중국의 대형 선단과 한정된 바다를 놓고 다퉈야 한다. 또 세월호 사고 후 ‘해양경비안전서’로 격하된 해경은 우리 어장과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해경이나 중국 어민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한중 간 민감한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톈진 항 폭발사고로 보하이 만 오염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2011년 기름 유출사고 이후 두 번째 맞는 위기다. 보하이 만에서 터진 위기는 서해바다와 곧장 연결돼 있다.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환경부 외교부 등은 폭발사고의 추이에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제발 신문에서 배를 까뒤집은 채 죽은 물고기떼를 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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