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전 의원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한 20일.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법리적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법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같은 당 소속 권선택 대전시장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자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권 시장에 대한 판결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9일 같은 당 박지원 의원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을 때에도 같은 당 김성수 대변인은 “꿰맞추기 식 판결은 수용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야당 정치인에 대한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당 차원에서 법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 법원을 비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당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항소심에서 내란음모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박대출 대변인은 “판결이 의아스럽다”고 지적했다. 2013년 10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주진우 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무죄를 선고했을 당시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 역시 “인기 영합적 판결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법원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판결을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로는 오판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당사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법부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도 없다. 1975년 8명을 사형시킨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은 ‘사법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1992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징역 3년형이 확정됐던 강기훈 씨는 23년이 지나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적어도 정당 차원에서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은 법률 제정 및 개정을 통해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상고법원 설치 여부가 현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제1야당의 잇따른 비판은 사법부에 정치적 수사(修辭) 이상의 무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일반인들보다 목소리가 훨씬 큰 정당이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불신하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더욱 깊어질 우려가 높다. 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법원은 법적 분쟁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는 곳이다. 국민이 사법부마저 믿지 못한다면 갈등을 해결할 마지막 수단은 주먹밖에 남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그토록 자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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