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서울의 한 대학 졸업반 백모 씨(23·여)는 유명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예술기획사 채용 공고를 확인했다. 사무보조 직원을 뽑는데 일당 9만 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백 씨는 회사와 전화 통화로 간단히 면접을 봤고 곧바로 합격했다. 회사는 A은행에 급여 이체용 통장을 개설하라고 백 씨에게 안내했다. 또 출입보안카드를 만들 때 체크카드 기능을 넣겠다며 체크카드와 카드 비밀번호도 요구했다.
사흘 뒤 출근 날짜만 기다리던 백 씨에게 황당한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는 은행 직원의 전화였다. 다급한 마음에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사용 중이던 다른 은행 계좌까지 모두 정지됐다. 그날 이후 백 씨는 자신의 계좌로 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 응하느라 취업 준비는 고사하고 피해 금액 220만 원을 갚기 위해 추운 겨울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백 씨는 “1년간 금융 거래가 제한돼 정규직 구직 활동도 못 하고 알바만 하고 있다. 알아보니 주변에 나와 비슷한 피해를 본 취업 준비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백 씨 등 구직자 221명에게서 취업 조건으로 금융 정보를 넘겨 받은 뒤 중국 범죄 조직에 팔아넘긴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황모 씨(28) 등 3명을 구속하고 차모 씨(27)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황 씨 일당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가짜로 구인 광고를 내고 취업 준비생을 유인했다. 피해자 221명 가운데 20대가 219명, 10대가 2명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포통장 사기가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마음이 급한 취업 준비생을 범죄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문모 씨(23)도 지난해 10월 대포통장 명의자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문 씨는 “범죄자로 몰렸다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몇 달간 취업 준비도 못 하고 허송세월했다”고 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포통장 신고 건수 1070건 중 60.6%(649건)가 가짜 구인 광고를 이용해 피해자를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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