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는 2012년 4월 ‘거짓말 탐지 기술’을 연구한다며 중소기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1750만 원을 지원받아 뇌파신호 측정기를 구입했다. 이어 지난해 2월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뇌파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뇌파 측정 장비를 구입한다며 800만 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장비를 구입하지도 않은 채 허위로 서류를 만들었다. A사는 이런 방식으로 2013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예산 3억여 원을 빼돌려 회사 운영 자금으로 썼다.
경북 경주의 한 부품소재 개발업체 B사는 2012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5억여 원을 들여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비철금속 부품소재 국산화’ 사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B사는 이미 소재 국산화에 성공해 생산까지 하고 있었다. B사 대표 김모 씨(50)는 마치 새로 개발한 것처럼 보고서와 가짜 세금계산서 등을 작성해 연구비를 가로챘다. 또 연구와 상관없는 장비를 구입한 뒤 필수품목처럼 서류를 조작하기도 했다. B사는 이런 수법으로 2009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국에너지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연구재단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6개 기관의 연구비 68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검 특수부(부장검사 형진휘)는 사기 등의 혐의로 A사 대표 최모 씨(54)와 B사 대표 김 씨 등 중소기업 대표 5명과 가짜 세금계산서 등을 발행해 이들을 도운 박모 씨(50) 등 6명을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또 장비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연구비를 받은 정부출연 연구기관 직원 등 13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해당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직원들이 빼돌린 돈은 111억 원이 넘고 피해를 본 기관은 9곳에 이른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는 2009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연구자재를 납품한 것처럼 가짜 세금계산서나 허위 견적서를 만들어 연구기관에 건네고 총액의 15∼40%를 수수료로 떼는 수법으로 14여억 원을 챙겼다. 박 씨는 자신의 통장으로 받은 돈 일부를 해당 중소기업의 차명 계좌로 돌려주기도 했다.
빼돌린 연구비는 회사 운영이나 개인적 용도로 사용됐다. 대구의 한 대학 장모 교수(60)는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석·박사급 학생의 인건비 3억여 원을 빼돌려 주식 투자에 썼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업체는 폐업했고 연구과제도 성과 없이 부실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미뤄 볼 때 부당하게 타낸 연구비를 흥청망청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구비가 줄줄 새는데도 해당 기관의 관리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분야 연구이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았고 각 기관끼리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검찰은 연구기관 정보 공유를 위한 통합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을 관련 부처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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