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주민들이 단속사지 발굴과 관련한 산청군의 방침에 반발해 보물 73호인 단속사지 서 3층석탑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세상을 버려야(죽어야) 이 동네를 떠나지, 병든 영감이랑 어디서 살라꼬(살라고)?”
비가 내린 20일 오전 11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강덕순 할머니(78)는 “우리 집에서 나가야 된다는 말을 듣고 사흘 동안 잠을 못 잤다. 하동에서 스무 살에 시집와 평생을 살았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탑동마을은 성철 스님 생가(겁외사)와 면화시배지(면화를 처음 재배한 곳)가 위치한 단성면 소재지에서 남사 네거리를 지나 지방도 1001호선을 따라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지리산 웅석봉(해발 1099m)이 감싸고 있는 한적한 시골이다. 이날 탑동마을 주민 20여 명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현수막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보물 72, 73호로 각각 지정된 단속사지 동, 서 3층석탑 바로 앞이었다. 마을 이름도 이 탑 때문에 생겼다.
대부분 70대 이상인 주민들은 ‘삶의 터전 쫓아내는 강제수용 결사반대’, ‘이주단지 조성하고 현실성 있게 보상하라’, ‘전답 두고 쫓겨나면 어디 가서 살 수 있나’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마을 붙박이인 이경영 씨(76)는 “산청군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계속 살 수밖에 없다. 우릴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산청군과 탑동마을 주민들의 마찰 원인은 신라 고찰인 단속사지(斷俗寺址) 발굴·복원사업 때문이다. 이 절은 신라 화공 솔거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유명 사찰이다. 현재는 3층 석탑 2개와 일부 절터만 남아 있다.
산청군은 절터인 단성면 운리 302 일원 41필지 1만6678m² 가운데 군유지를 제외한 사유지 35필지 1만4198m²를 매입해 내년 말까지 발굴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사업비는 토지매입비 14억1100만 원과 발굴조사비 4억2300만 원 등 18억3400만 원.
‘단속사지 토지수용 반대대책위원회’ 이종택 위원장(51)은 “산청군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으로 주택만 수용당하고 전답을 포기한 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며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쥐꼬리 보상’이 나오더라도 마을 주변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집을 짓기 어렵고 이사를 하면 전답과 거리가 멀어 생계유지도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마을 전체를 옮길 수 있는 이주단지 조성, 토지 및 주택에 대한 현실보상,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토지와 전답의 일괄 수용 등을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업 추진 반대는 물론이고 생존권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산청군도 단호하다. 10가구 이상이 함께 이주를 희망할 경우 이주대책을 수립하도록 돼 있지만 현재는 6가구 정도만 이주를 바란다는 설명이다. 전답 보상 역시 예산이 많이 들어 실현 가능성은 낮다. 권갑근 산청군 문화재담당은 “단속사지는 발굴을 거쳐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받아 문화재 가치를 높이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주민 주장이 지나치지만 계속 의논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토지와 시설물의 강제 수용도 가능하지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라는 것. 주민 요구와 산청군 방침이 팽팽히 맞서 단속사지 발굴을 둘러싼 마찰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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