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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66>엄마 아빠들의 ‘허세잔치’
주부 이수정(가명·32) 씨는 지난달 딸아이의 돌잔치를 치렀다. 첫애 돌잔치라서 후회 없이 치르고 싶었다. 준비는 봄부터 했다. 장소 예약부터 한복과 드레스 예약, 맞춤 돌상 업체 섭외, 기념촬영 스튜디오 예약, 성장 동영상 제작 등 알아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
우선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에 50인 규모 연회장을 예약했다. 코스요리 식사비용은 1인당 9만 원. 돌상 준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은 업체와 따로 계약했다. 수국 생화 장식을 더하니 기본 60만 원짜리 돌상 가격이 85만 원으로 올랐다. 손님 테이블까지 생화로 장식을 하기로 하자 10인용 테이블 한 개당 10만 원씩 추가됐다.
여기에 결혼식에만 있는 것으로 알았던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줄여 부르는 말)를 추가하니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했다. 자녀 출생 후 50일, 100일, 돌 기념 촬영 패키지 가격이 100만∼150만 원, 엄마 머리 손질과 출장 메이크업 비용, 3인 가족의 한복 대여료와 중간에 갈아입을 아기와 엄마 드레스, 아빠의 턱시도 비용 등 돈 들어가는 곳이 끝이 없었다. 이 씨는 “돌잔치가 들면 얼마나 들까 생각했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씨의 돌잔치 비용은 800만 원대 후반이었지만 하객이 많으면 10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돌잔치는 과거 신생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 생후 1년 동안 무사히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아사망률이 1000명당 3명(201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1명)보다 낮은 상황에서 굳이 거창하게 돌잔치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60세까지 살았으니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가족 친지들을 다 불러다가 요란하게 치르던 환갑잔치가 어느새 사라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즘 60세면 경로당에도 못 갈 나이다.
더욱이 많은 경우에 첫애 돌잔치는 하면서 둘째 애는 생략한다. 특히 주말에라도 돌잔치 초대를 받으면 모처럼 쉬는 날에 가고 싶지 않지만, 안 가자니 초대한 아빠 엄마에게 미안해 가기도, 안 가기도 편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달 전 돌잔치를 치른 주부 양영미 씨(29)는 “다 엄마 아빠 욕심이다. 수십만 원짜리 돌상을 앞에 놓고도 아이가 열이 나서 보채다 잠드는 바람에 정작 돌잡이는 하지도 못하고 끝났다”고 말했다. 그 역시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결혼식 다음 날부터 돌을 준비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남부럽지 않은 잔치를 마련했지만 후회만 남았다. 양 씨는 “아이는 그저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다”며 “친지들과 조촐하게 식사하고 가족사진을 찍는 것 정도로 했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초대하는 사람도, 초대받은 사람도 모두 불편한 떠들썩한 돌잔치가 이제는 추억의 미풍양속으로 사라질 때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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