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31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29회째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교와 재단, 개인 2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 4명씩이 참여해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 신입생 1대1 면담 전통… “학교는 인성교육의 요람” ▼
교육) 광주 살레시오여고
광주 살레시오여고는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인성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장선생님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가 쉽지 않지만 살레시오여고는 다르다. 류경희 살레시오여고 교장수녀는 올해 초 300명이 넘는 신입생을 모두 1 대 1로 면담했다. 류 교장수녀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며 “짧은 순간이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살레시오여고는 담임교사들도 한 학기에 두 번씩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하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주고 있다. 편부모나 조손가정 등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도 교사와 단둘이 있을 때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말문을 연다.
살레시오여고는 명상의 시간, 합창경연대회, 부모와 함께하는 봉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인성교육을 함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소록도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류 교장수녀는 “2학기에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성교육은 일반 수업시간에도 배어 있다. 1학년은 ‘생활과 인성’, 2학년은 ‘생활과 종교’, 3학년은 ‘생활과 심리’ 과목을 전원 선택과목으로 이수하고 있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1년이 지나면 착해지고, 2년이 지나면 더욱 착해지고, 3년이 지나면 그보다 더욱 착해진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돌 정도다. 다른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끈끈한 유대관계의 밑바탕에는 이런 노력과 전통이 있다는 평가다.
류 교장수녀는 “홈커밍데이에는 연세가 지긋한 대선배들이 찾아와 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며 “학생들도 졸업생들의 이런 마음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을 국제화교육과 연계한 점도 특별하다. 살레시오여고는 네팔 지진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에게 국제사회에서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당 재난국가를 돕는 교내 행사를 열기도 했다. 미국, 캐나다, 일본에 있는 살레시오 자매학교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러 나라의 다양성을 체득하고 포용하는 법도 배운다. 류 교장수녀는 “학생들이 학교를 집처럼 느끼고 선생님을 가족처럼 친밀하게 느끼도록 하는 게 올해 목표”라며 “학생들에게 학교는 또 하나의 집”이라고 말했다.
공적
살레시오여고는 1961년 1월 살레시오 수녀회가 세운 가톨릭 학교. 개교 당시 9학급이었으나 초대 교장인 안칠라 그릿디 수녀 취임이래 1970년 12학급, 1974년 24학급, 1994년 30학급으로 성장해 현재 총 1006명(29학급)이 재학 중이다. 2006년부터 몽골 해외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사학기관 경영평가에서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2011년 일본 도쿄 세이비여고와 국제교류 자매결연을 했고 2012년에는 인성교육실천 우수학교에 선정됐다. 2013년엔 영어교육모델창의경영학교 성과 우수학교에 선정돼 표창을 받았다. 올해 2월 제52회 졸업식에서 338명이 졸업해 개교 이래 총 2만88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3월 현 류경희 마리아 제네로사 교장수녀가 취임했다. ▼ 국내 언론지원 반세기… “인촌선생이 성곡선생에게 준 상” ▼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성곡언론문화재단(성곡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한종우 이사장(83)은 “창립자인 성곡이 1930년대 말 보성전문학교에 재학할 당시, 교장이던 인촌을 모델로 삼아 인촌의 3대 과업인 산업, 교육, 언론 육성의 뜻을 이어받고자 노력했다”며 “인촌의 길을 따르고자 했던 성곡의 노력이 창립 반세기 만에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성곡은 금성방직과 쌍용양회를 창업한 후 대구 현풍중고교와 국민대를 설립, 인수했으며 동양통신과 연합신문 등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기업가·교육가·언론인이었던 인촌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한국 최초의 언론 지원 재단인 성곡재단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언론 규제를 위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해 언론계와 갈등을 빚은 것이 재단의 창립 계기가 됐다. 당시 박 대통령과 언론인들의 ‘유성(儒城)회담’을 주선한 성곡은 이 법의 시행을 미루는 대신 언론사 각자가 자율적으로 윤리강령을 만들도록 했으며 언론인의 자질향상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성곡재단은 영국의 톰슨, 미국의 니먼 재단을 모델로 설립된 후 현역 기자들의 해외 유학 및 연수 사업을 통해 언론인의 소양을 기르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뒀다. 1966년 중견 기자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인터뷰 자리에 한 이사장과 함께한 박현태 전 KBS 사장은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일본 도쿄대로 1기 연수를 떠났다. 그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수준으로 여권도 쉽게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며 “당시 해외 연수를 통해 기자로서 국제적인 감각과 선각자적인 혜안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곡재단은 이후 삼성언론재단(1995년)과 LG상남언론재단(1995년) 등 민간언론재단이 설립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0% 독자적인 출자로 창립된 성곡재단은 쌍용양회의 주식배당금과 쌍용그룹의 지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 왔다. 한 이사장은 “외환위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도 언론계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며 “언론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언론인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적
국내 최초의 언론재단으로 1965년 9월 창립 이후 현역 언론인들이 해외 대학에서 유학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왔다. 재단은 지난 50년간 총 213명의 언론인이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일본 도쿄대, 영국 카디프대, 프랑스 파리대, 독일 베를린대 등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체재비와 학비 등을 지원했다. 재단은 또 기자 재교육 사업을 위해 1968∼1978년 서울대 신문대학원에 입학한 현직 언론인 150여 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 바 있다. 1989년에는 한국언론학회에 ‘성곡언론학연구기금’을 창설했고 1993년 9월부터 학술계간지 ‘언론과 사회’를 발간하고 있다. 1994년 11월 미국 미주리대로부터 한국언론의 국제화에 기여한 공로로 ‘언론공로메달’을 받았다. ▼ 6·25 직후부터 60년 한우물… “중문학계 전체가 받는 것” ▼
인문·사회)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
“제가 중문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이 분야를 이해하는 사람도, 관련 논문도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인문 분야에서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의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성장한 중문학계 전체가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수내로 자택에서 만난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81)는 과거 펴냈던 번역서 ‘중용’의 개정판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가 중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교 시절 학도병으로 참전한 6·25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황포군관학교 출신 중공군 장교를 만나면서부터다. ‘제대로 된 소총도 없이 꾸준히 전투를 벌이는 중국을 우리가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대 중문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중문학 교수진도 적었고, 그나마 일부가 월북하거나 납북당한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1959년 국비 유학생으로 대만으로 유학해 중국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베이징대 교수들에게서 배우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귀국해 처음 쓴 중국의 탈놀이에 관한 논문이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번역돼 현지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1961년 그는 서울대에서 중문학 강의를 시작했지만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 중문학 고전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일반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이때부터 번역과 저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적 시각으로 주석을 단 당시 번역서 중 일부는 최근까지도 개정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그때는 한자에 토를 달아 놓은 값싼 문고본, 이른바 ‘딱지본’이 전부여서 틀려도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책을 썼다”며 “전국에 고전 강연을 하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부터는 초기의 관심으로 돌아가 중국 전통 민간 연희 연구를 시작했다. 한중 수교 이전부터 정부 허가를 받아 중국 각지로 연희 탐사를 다녔다. 그때 수집한 중국 전통 탈 300여 점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김 교수는 “당시는 중국에 지방 연희에 관심을 가진 학자가 거의 없었고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팔순이 넘은 지금도 북송 시대와 위진 남북조시대의 문학사에 관한 책을 각각 내기 위해 준비하는 등 왕성한 연구열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데 곁눈질하지 않고 평생 중문학만 파 왔습니다. 이번 수상도 계속 중문학계를 위해 헌신하라는 뜻으로 생각하는데, 늙은 저의 힘이 어디까지 닿을지 걱정입니다.” 공적
학계에서 중문학의 입지가 협소하던 195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해 중국문학 연구의 토대를 닦은 대표적 중문학자다. 서울대 중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과정과 국립대만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줄곧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1967년 국내 최초로 서경(書經)을 완역한 이래 유학의 핵심 경전과 제자백가의 주요 고전을 현대적 해석을 담아 펴냈고 동양 고전 읽기 운동을 벌여 대중화에 기여했다. 중국의 학자들이 민간 전통 연희에 주목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탈놀이 ‘나희(儺戱)’를 비롯한 전통 가무와 잡희에 관해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국내외에서 현대 중문학 연구의 대표서로 꼽히는 ‘중국문학사’를 1986년 저술하는 등 연구서와 번역서 70여 권을 냈다. 학술원 회원이다. ▼ ‘화학적 암 예방’ 세계적 석학… “암 발생 줄이는 게 평생목표” ▼
과학·기술) 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
“훌륭한 은사님들과 헌신적인 연구원들 덕분에 이런 큰 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학문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기 마련이지만 유행 타지 않고 30년간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온 끈기에 대한 격려로 생각하겠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58)는 인촌상 수상의 영광을 스승과 제자들에게 돌렸다. 그는 “체내에 독성물질이 들어가면 간에서 해독 과정을 거치지만 발암물질은 오히려 독성이 강해져 ‘조물주의 실수’로 불린다”면서 “1985년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암 발생 연구를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화학적 암 예방(ChemoPrevention)’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안전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일탈’하는 과정을 막아 암 발생을 줄이는 게 서 교수의 목표다.
그동안의 연구 업적은 화려하다. 2003년 10월에는 암 분야 최고 저널로 꼽히는 ‘네이처 캔서 리뷰(Nature Cancer Review)’에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단독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매년 10편 이상, 총 2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인용 횟수는 1만4000회를 넘겼다. 미국 최대 온라인 의학 도서관인 ‘펍메드(PubMed)’ 검색창에 그의 영문 성인 ‘Surh(서)’를 치면 ‘Surh Young-joon’이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뜬다.
서 교수는 2011년부터 서울대에서 ‘종양미세환경 글로벌 핵심연구센터’를 이끌며 정상세포가 고장을 일으켜 암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밝혀냈다. 서 교수는 “암은 오랜 세월 인류와 역사를 같이한 질병인 만큼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 연구실은 ‘과학자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2000년부터 9년 연속 ‘미국암학회’가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상(Scholar-in-Training)’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도 중국 옌볜(延邊)대 출신 중국동포 연구원이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예측과 다른 ‘네거티브 데이터’가 나오더라도 숨기거나 실망하지 말고 이걸 ‘반전’으로 삼아 새로운 논문을 쓰라고 조언한다”면서 “스스로 실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갖춘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공적
서울대 제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발암물질이 정상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 밝혀낸 제임스 밀러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의 논문을 읽고 감동을 받아 무작정 손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인연이 돼 2000년 작고한 밀러 교수가 논문지도를 한 ‘마지막 제자’로 유학 생활을 시작해 199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원, 예일대 의대 조교수를 거쳐 1996년 서울대 약대 교수로 부임했다. 2011년에는 서 교수 연구실이 글로벌핵심선도연구센터(GCRC)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지식창조대상, 2012년 보령암학술상, 2013년 한국 과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2014년부터는 대한암예방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제29회 인촌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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