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文人 미공개 유품 2315점… 종로구, 3년뒤 문학관 개관 위해 확보
청사내 예술품 수장고 만들어 보관… 이태준-한설야 등 월북작가 자료도
‘글 쓰시는 손을 아껴셔셔 밥 짓고 빨래할 때는 왼편 손을 使用(사용)하신다는 얘기를 누구에게선가 들었는데 오늘 같은 펑펑 울구 싶도록 무거운 날씨에 글 쓰시는 팔이 앓리지나 않는 것입니까?’(이영도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연도 미상)
광복 전후 여성 작가의 삶은 어땠을까.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와 소설가 최정희(1912∼1990)가 나눈 서신 여러 통에는 작가와 어머니 역할 사이의 고뇌, 가사노동의 부담까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여성 작가들과 춘원 이광수(1892∼1950), 김동리(1913∼1995) 등 근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편지, 사진 등 미공개 유품 2315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된 유품들은 현재 서울 종로구가 소장하고 있다. 종로구는 2018년 ‘종로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지난해 3월부터 일제강점기 종로지역에 기반을 둔 여러 작가의 유족들에게서 육필 원고, 편지 등의 자료를 확보했다. 특히 훼손 우려가 큰 유품의 보관을 위해 구청 3층에 2억3200만 원을 들여 수장고(86.4m²)를 만들었다. 365일 항온(섭씨 20도 이내), 항습(55% 안팎)이 유지된다. 기초자치단체가 청사 안에 수장고를 만든 건 이례적이다.
최근 본보가 직접 확인한 유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춘원의 영문판 ‘신약성경’. 1920년대 미국에서 출간된 이 성경책은 그간 존재만 알려졌을 뿐 실물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평소 여러 종교에 관심을 가진 춘원이 1945년 광복 직후 막내딸 이정화 씨(80)에게 건넨 유일한 유품으로 알려졌다. 5월 초 미국에서 입국한 이 씨가 종로구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 밖에 애주가로 유명한 김광균 시인(1914∼1993)이 늘 품에 지니고 다닌 ‘위스키 술병’, 소설가 김동리의 유족이 기증한 ‘일편심(一片心)’ 글귀가 새겨진 은장도 역시 당시 작가와 가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료의 대부분은 최정희의 둘째 딸인 작가 김채원 씨(69)가 소장하던 것이다. 삼천리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최정희는 1950년 6·25전쟁 중 피란을 가면서 “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며 편지와 사진, 신문 등 소소한 문건을 꼼꼼히 챙겼다. 최정희 유품 인수 작업에 참가한 서영은 작가(72·여)는 “시인 이상(1910∼1937)이 짝사랑할 정도로 문단에서 인기가 많던 최정희의 유품에는 과거 문인들의 작품세계, 고민이 모두 드러나서 연구 가치가 높다”며 “특히 상허 이태준(1904∼?), 한설야(1900∼1976) 등 월북 작가의 자료도 포함돼 있어 깊이 검토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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