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67>체면치레용 전락한 선물
경남 창원시에 살고 있는 주부 심모 씨(55)는 최근 조카의 쌍둥이 돌잔치를 위해 돌반지를 사러 갔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다. 아기 손가락만 한 작은 반지가 한 개에 20만 원을 호가했던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 국제 금값 하락으로 값이 떨어진 게 그 정도였다. 부담스러웠지만 ‘염치없는 이모’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지갑을 열었다. 돌반지를 건네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돌반지를 받는 쪽도 속이 편한 건 아니다. 얼마 전 돌잔치를 치른 이모 씨(34)는 하객들이 선물한 돌반지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상대방에게도 이 정도는 해줘야 체면이 설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씨는 “돌반지를 모아두면 나중에 애가 큰 뒤 목돈이 된다고들 하지만 사실 꼭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나도 안 줄 순 없으니 다른 사람 돌잔치 때 금값이 오르지 않기만 빌 뿐”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돌잔치에는 당연히 주고받는 것이라 여겨졌던 돌 금반지도 보여주기식 행사의 일부분이 됐다. 아기의 건강을 빈다는 원래의 좋은 의도보다는 ‘내가 이렇게까지 해 준다’, ‘나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체면치레용의 성격이 더 강한 것이다.
돌잔치가 고급 예식으로 바뀌다 보니 하객들한테 답례용으로 주는 선물도 고급화되는 추세다. 한 달 전 딸의 돌잔치를 치른 추모 씨(35)는 하객 선물을 마련하느라 예상치 못한 돈을 써야 했다. 돌상과 의상, 음식 등이 포함된 패키지 외에 하객 상품으로 줄 고급 향초와 출구에서 나눠 줄 손세정제, 행사 중간에 경품처럼 나눠줄 백화점 상품권까지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추 씨는 “하객들의 반응이 신경 쓰여 꽤 큰돈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래 돌잔치는 부수적인 지출까지 해야 할 행사가 아니었는데 최근에 크게 치르는 게 유행이 됐다”며 “주변 사람들이 하는 수준만큼은 따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체면을 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