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내년 11월 20일까지 1년여를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으로 선포해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을 용서하는 종교적 권능을 사제에게 부여하기로 했다. 가톨릭에서 25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신자들에게 특별한 영적 서비스를 베푸는 해인데 이번은 정기 희년과는 무관한 특별 희년이다.
▷가톨릭에서 낙태는 중죄(重罪)다. 프랑스 아일랜드 스페인 등과 같은 나라들의 출산율이 높은 것도 낙태를 금기시하는 가톨릭의 영향이 있다. 가톨릭 전통에선 낙태를 하거나 낙태 시술을 도와준 사람은 파문을 당해 많은 여성이 가톨릭을 떠나거나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이번 사면은 종교의 본령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임을 일깨우면서 낙태를 한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물했다.
▷낙태 사면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까지 보여준 포용적 행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황은 2013년 “만약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선한 의지를 갖고 주님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들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가톨릭에서 동성애, 이혼, 낙태는 교리상 받아들일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보수 가톨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앞장서 낙태 사면 의지를 밝혔으니 그 의미와 파장이 더욱 크다.
▷낙태에 엄격한 전통이 강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이 이런 인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는 연간 17만 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에 따라 불법 낙태시술을 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건수가 줄고 있지만 대신 은밀하고 위험해지는 추세다. 낙태는 정부가 단속할 사안이라기보다는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게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미혼모가 떳떳하게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관용 문화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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