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산 정상 탐방로가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지질 특성 무시해 곳곳 낙석 위험…백록담 정상 2.7km 긴급 안전진단
낙석사고-교통문제 등 고려…다양한 코스 만들어 탐방객 분산해야

지난달 30일 한라산 등산로 관음사 코스. 좁디좁은 ‘개미등’ 지역을 벗어나자 해발 1500m에 있는 대피소 뒤로 뾰족한 삼각봉 모습이 드러났다. 장구목오름(오름은 작은 화산체)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솔개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연두봉’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봉우리다. 중간 높이에 누런 흔적이 드러났다. 이곳에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바위가 탐방로를 덮치면서 나무 덱은 풍비박산이 났다. 5월 19일 낙석이 발생한 이후 삼각봉대피소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2.7km 구간은 출입이 금지된 후 안전 진단이 실시됐다.

대한산업안전협회는 안전 진단 용역 최종 보고서에서 3중의 낙석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장기적으로 우회 탐방로를 내어 낙석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할 것을 제안했다. 낙석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시설 보수와 함께 동절기나 해빙기에 선제적인 낙석 제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속적인 낙석 발생으로 삼각봉 상부 암반까지 유실될 수 있다는 진단 결과도 나왔다.

한라산 삼각봉에서 떨어진 바위가 관음사 코스의 탐방로를 덮쳤다. 이 낙석 사고로 삼각봉대피소∼백록담 정상 구간의 출입이 통제됐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 삼각봉에서 떨어진 바위가 관음사 코스의 탐방로를 덮쳤다. 이 낙석 사고로 삼각봉대피소∼백록담 정상 구간의 출입이 통제됐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지질 특성 무시한 탐방로

삼각봉 아래 탐방로 구간은 낙석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으로 이미 대형 펜스가 쳐져 있다. 하지만 일부 펜스는 올해 초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낙석 사고는 펜스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예산을 확보해 내년 8월까지 추가로 낙석 방지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때까지 한라산 정상에 이를 수 있는 대표적인 탐방 코스가 통제된다.

문제는 낙석 방지 시설을 하더라도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한라산 정상 탐방로인 성판악 코스 동릉 구간의 단단한 현무암과는 달리 삼각봉은 조면암으로 이뤄져 풍화작용 등으로 쉽게 부서진다. 장기적으로 삼각봉 주변 탐방로를 폐쇄하고 대체 탐방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지질에 대한 판단이나 기초연구 없이 편의성과 접근성으로만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지질 특성은 탐방객 안전은 물론이고 한라산 훼손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탐방로 정비나 개설 시에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탐방로 보완 정비 필요

한라산 탐방로는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인근 자연석을 깨 계단을 놓다가 1994년부터 침목, 자갈 등을 까는 방식이 도입됐다. 한라산 주요 탐방로는 어리목(6.8km), 영실(5.8km), 성판악(9.6km), 관음사(8.7km), 돈내코(7.0km) 코스 등으로 이 가운데 현재 정상에 갈 수 있는 탐방로는 성판악 코스가 유일하다. 지난해 한라산을 찾은 탐방객 116만6000여 명 가운데 36%인 41만8000여 명이 성판악 코스로 몰린 이유도 정상 등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판악 코스 출발점인 탐방안내소 주변 도로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주말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주지역 산악계에서는 이번 낙석 사고와 교통 문제 등을 고려해 탐방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상 등산의 다양한 코스를 제공하고 탐방객을 분산하기 위해 백록담 남벽 갈림목에서 동릉 밑 성판악 코스까지 1km가량을 연결하는 보완 구간 개설 의견도 제시했다. 연결 구간이 생기면 어리목, 영실, 돈내코, 성판악 코스 등으로 정상 탐방객을 분산시킬 수 있다.

김창조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장은 “탐방로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점이 왔다. 필요하다면 식생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탐방로를 조정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탐방로 정비와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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