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골프가 ‘국민 스포츠’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좋든 싫든 2015년 9월 5일은 대한민국 120년 골프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날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공무원골프대회를 최초로 개최했기 때문이다. 야권과 학부모단체는 비판 수위를 높이는 등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홍 지사는 행사 전 골프가 ‘국민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무원들에게 “앞으로 자기 돈 내고 실명(實名)으로 당당하게 치라”고 말했다. 국내 500개 골프장의 연간 내장객은 3314만 명. 골프 인구는 1년 이내 골프 경험자(골퍼) 기준으로 300만 명 선이다. 실내에서 즐기는 스크린골프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과연 홍 지사 말대로 골프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일까. 대중(퍼블릭) 골프장 18홀을 기준으로 평일은 12만 원, 주말은 18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번 대회가 열린 골프장은 주말에 21만∼25만 원이다. 식비와 차량 운행비를 제외한 액수다. 골프장 식음료 가격은 최고급 호텔과 맞먹는다. 500원짜리 생수를 2000원 이상 받기도 한다. 라운딩에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1회에 20만∼30만 원, 7∼9시간을 써야 한다면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대회에도 총액 4000만 원 이상이 지출됐다.

골프를 시작하려면 목돈도 필요하다. 골프채를 사려면 최소 100만 원은 있어야 한다. 수백만 원짜리도 허다하다. 신발과 옷, 공, 장갑 마련에도 30만∼80만 원은 든다. 필드에 나가기 전 3개월 정도 교습비도 75만∼100만 원이다.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 한 달에 두 번 라운딩이면 한 가정의 월평균 식료품비와 맞먹는다. 대중골프장은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지만 회원제 골프장은 아무나 가기 어렵다. 시간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어느 월급쟁이가 편안하게 골프를 할 수 있겠는가.

등록 재산 29억5000만 원(2014년)인 홍 지사를 포함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연간 수십 차례의 골프라도 큰 부담은 아니다. 기관장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있고 회원권을 보유한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100만 명 안팎의 공무원 평균 연봉이 5600만 원(기준소득월액 기준)이라지만 아직은 자비를 들여 골프 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골프는 대중 스포츠이므로 공무원이 즐겨도 된다”가 아니라 “빠듯하지만 이제 공무원도 골프를 칠 수 있는 수준 아니냐”고 따지는 편이 낫다.

역대 정부는 툭하면 공무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기강을 잡는 데도 골프를 끌어들였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홍 지사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이 골프 대중화의 지표일 순 없다. “대중화로 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뚝심이든 오기든 홍 지사는 사상 첫 공무원골프대회 개최자로 남게 됐다. 그가 시대의 흐름을 한발 앞서 읽은 것인지, 아니면 민심을 역류한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골프를 ‘국민 스포츠’라고 우기며 등산, 축구와 동일시하는 주장은 접었으면 좋겠다. 그건 서민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세상이 항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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