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으며/김용희]‘함께함’의 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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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곤충기’와 ‘시턴의 동물기’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생물학적 의의가 높다. 그러나 학자들은 시턴의 기록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파브르는 관찰하였고 시턴은 직접 동물을 키우고 함께했기 때문이란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될 때 목숨을 걸고 환자와 함께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면서, 남북한 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 전역을 미루는 병사들을 보면서 ‘함께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은 심리학과 인문학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다. 경제적 환경은 나아졌으나 내면이 황폐화되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는 전통적 신도 의미를 잃고 공동체적 삶도 해체되어 버린 이러한 현대적 상황을 허무주의(Nihilism)라고 표현한 것 같다.

심리학은 심리현상에 대해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철학은 인간을 사유하게 하고 문학은 삶을 관조하게 하지만 이런 인문학적인 것들이 인간의 본질적 공허를 온전히 치유함에서는 그 길이 멀어 보인다.

요즘 공동체적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미쓰 와이프’란 영화는 소위 잘나가던 여자 변호사인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서민이지만 가족애가 넘치는 가정에서 한 달간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타인의 삶을 대리해서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이다. 비프스테이크만 썰던 주인공이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국을 끓여야 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과적으로 가족 간의 사랑, 함께함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도대체 이전에 내가 무슨 짓을 했던가”라며 눈물로 자성한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 또한 이성적 사랑 때문에 온통 삶이 왜곡되어 버려도 세상 권력을 다 얻고도 그것 또한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음을 두 남녀 주인공이 자결을 통해서 알려주는 영화로 보인다. 함께하지 않으면, 같이 나누지 않으면 심리학도, 인문학도, 문학도, 철학도, 종교까지도 모두 공허한 메아리일 수 있다.

이웃들을 돌보느라 오히려 미사에서는 졸고 있는 테레사 수녀, 길가에 버려진 사람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치료해준 사마리아인, 방호복을 입고 무더운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메르스와 사투했던 의사와 간호사들….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 늘 만나는 이들에게 성심을 다하는 것. 그것 말고는 무엇도 의미 없을지 모른다.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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