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권영민]文解 능력의 진정한 가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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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최근 세계문해재단(World Literacy Foundation)에서 ‘문맹의 사회경제적 비용’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2003년 호주에서 설립된 이 재단은 문맹 퇴치를 비롯한 각종 사회문화 운동을 세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 있다. 이 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문맹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이 전 세계를 합친다면 1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은 3620억 달러, 일본은 842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국은 2015년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대략 1조4351억 달러인데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문맹(文盲)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87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예시하고 있는 수치는 유네스코가 개발한 여러 가지 지수를 조합하여 계산하는 방식에 따른 것인데, 국내총생산의 약 2%가 문맹으로 인하여 생기는 손실 비용이 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한국은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한국 국민 모두가 배우기 쉬운 한글 덕분에 읽고 쓰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

국립국어원에서는 19세 이상의 성인 가운데 한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전혀 없는 비문해자(非文解者)가 6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조사 보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글자를 읽을 수는 있으나 문장 이해 능력이 거의 없는 반문해자(半文解者)가 198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계산해 보면 19세 이상 성인의 7%인 260만 명 정도가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동안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탈북자들이 꾸준히 증가해 왔기 때문에, 아마도 일상적인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한국이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라고 자랑할 수만은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해 준다.

인간 생활에서 문해 능력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는 경제적 손실만이 아닐 것이다. 문해 능력은 대중적 소통이라든지 사회참여 활동과 직결된다.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각종 사회문화적 활동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저임금의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으니 빈곤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도 어둡고 범죄에 빠져들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심각한 계층적 불균형이 생기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그만큼 증가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문해 능력의 부족만이 아니다. 한국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터넷, 스마트폰 등 새로운 매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매체들을 통한 각종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며 이들을 매개로 하는 모든 사회문화적 소통 관계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문화적 불균형과 격차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창조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꿈꾼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문해 능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비문해층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회교육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날로 발전 변모하는 매체 환경에서 소외된 노년층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문화 융성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세대 간의 문화적 격차와 계층 간의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문해 능력의 진정한 가치를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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