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6000만 원 비정규직 노조원 광고판 무단 점거로 연봉 2000만 원 영세한 회사 도산한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다. 현수막의 주인은 이 건물 옥상에 설치된 10m 높이의 광고판을 운영하는 광고업체 ‘명보애드넷’. 평소에는 환하게 빛을 내며 광고를 내보내는 전광판이지만 현재는 완전히 꺼져 있다.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소속 비정규직인 최정명(45) 한규협 씨(41)가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광고판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공 농성의 발단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아차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가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불복 의사를 밝히며 항소했다. 사안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근로자들은 고공 농성을 선택했다.
고공 농성은 노사 갈등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난달 경남 창원시에서는 화물연대 동양파일분회 조합원 2명이 계약 만료된 조합원 7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20m 높이의 송신탑에 올랐다. 15일간의 고공 농성 끝에 5명이 복직하고 2명이 운송 재계약을 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최 씨 등과 기아차 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최 씨 등은 장기간 결근, 회사 복귀 명령 불이행을 이유로 소속사인 기아차 하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3일 고공 농성 후 처음으로 정규직화 문제를 위한 특별 교섭이 진행됐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회사 측은 고공 농성 중단을 각각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농성이 길어지자 엉뚱하게도 광고판 관리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 명보애드넷의 연간 매출은 약 58억 원(2014년 기준). 인권위 건물에 있는 광고판은 매출의 10% 이상(연간 6억9000만 원)을 차지한다. 급기야 농성 중인 근로자들과 광고업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명보애드넷은 6월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이후 고공 농성이 마무리되면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방침이다. 현수막을 내건 이유도 마찬가지. 회사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 측을 면담한 결과 근로자의 실질 연봉(수당 포함)은 5000만∼6000만 원대로 알려졌다”며 “평균 연봉 2000만 원대의 작은 회사가 이들의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라며 날을 세웠다. 한편 노조 측은 수당을 제외할 경우 하청 업체 근로자의 월급은 200만 원대라고 밝혔다.
명보 측은 노조 관계자의 건물 출입을 막고 있다. 노조 측은 “한 달 동안 현수막을 걸지 않는 등 광고업체가 광고를 재개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조했지만 업체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간자 역할을 해 왔던 인권위가 다음 달 3일까지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업체의 거부로 그동안 인권위가 해오던 농성 근로자 도시락 배달 문제 등이 당장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고공 농성 100일째인 18일을 앞두고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이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고 근로자들이 광고판에 대형 현수막을 걸겠다고 예고해 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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