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엉뚱한 곳 출동… 살인극 못막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어머니가 흉기 갖고 여친 기다린다” 아들 2차례 신고
다른 사건으로 오인해 30분 허비… 지나던 다른 순찰차가 60대母 검거

경찰의 안일한 현장 대응으로 3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두 번이나 신고를 받고도 인근에서 벌어진 다른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12일 오후 9시 42분경 자신의 집 앞에서 아들의 연인 이모 씨(34·여)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 씨(64·여)를 검거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하던 박 씨는 전화로 다투다가 집으로 찾아온 이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다. 이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박 씨 아들인 이모 씨(34)는 사건 발생 30분 전인 이날 오후 9시 12분 ‘어머니가 흉기를 갖고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비슷한 내용의 가정폭력이 신고된 인근 주택을 박 씨 집으로 알았다는 것. 경찰은 “아들이 ‘103호’로 신고했지만 순찰차는 인근의 ‘지하 03호’로 출동했다. 지번까지 비슷해 같은 사건인 것으로 잘못 알았다”고 해명했다.

박 씨 아들은 경찰이 도착하지 않자 15분 뒤 다시 신고했다. 112지령실은 이상을 감지하고 재차 출동을 지시했지만 순찰차는 이때도 앞서 잘못 갔던 ‘지하 03호’로 다시 출동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이 오지 않는 사이 이 씨는 박 씨의 집 앞에 도착했다. 3분가량 말다툼을 벌이다 이 씨가 던진 핸드백에 얼굴을 맞아 격분한 박 씨는 갖고 있던 흉기로 이 씨를 살해했다. 박 씨를 검거한 것도 다른 사건을 처리하고 현장을 지나치던 다른 경찰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사건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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