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12 신고 내용을 정확히 처리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살인사건이 또 벌어졌다. 12일 오후 9시 12분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박모 씨의 아들이 112 전화로 ‘어머니가 흉기를 들고 여자친구를 기다린다’는 신고를 했다. 그러나 한남파출소는 10여 분 전 신고가 들어온 인근의 다른 가정폭력 현장에 순찰차를 보냈고, 그곳에는 이미 다른 순찰차가 사건 처리를 하고 있었다. 중복 신고로 간주한 순찰차가 복귀하던 중 길에서 소리치는 박 씨 아들의 친구를 보고서야 9시 42분경 현장에 도착했다니 기가 막힌다. 박 씨가 살인사건을 저지른 다음이었다.
112 신고는 초를 다투는 중요한 긴급 전화다. 무엇보다 신고자의 위치와 신고 내용의 파악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2012년 경기 수원에서 중국동포 오원춘에게 성폭행당할 위험에 처한 여성이 다급하게 112 전화를 걸었지만 신고 접수자가 불필요한 질문을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해 결국 살해된 사건이 기억에 생생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해 취임하면서 ‘오원춘 사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112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 경찰이 신고전화로 다시 걸어 확인하는 ‘콜백 시스템’ 회신율은 8%에 불과했다. 112 상황 접수와 전파가 고도의 훈련 과정을 거친 전문가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경찰이 얼마나 신속히 대응하느냐에 따라 시민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경찰은 어제 국정감사에서 112 신고 접수요원을 탄력적으로 배치하고 출동요원 현장교육을 강화하는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말보다 실천이다. 아직도 경찰은 112 신고자의 동의 없이는 위치 추적을 할 수 없다. 국회는 112에 전화하면 미국처럼 신고자 위치를 자동 확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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