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골목길의 ‘조용한 변화’… 문화의 향기가 퍼져나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3시 00분


인천 신기촌시장 일대서 문화축제… 풍물패 길놀이-마당극 등 열려
낡은 주택 개조해 전시실 꾸미기도

인천 남구 신기촌시장으로 연결되는 골목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단 ‘듬’에서 올 7월 마을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야외에서는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대안문화공간 듬 제공
인천 남구 신기촌시장으로 연결되는 골목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단 ‘듬’에서 올 7월 마을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야외에서는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대안문화공간 듬 제공
10일 저녁 인천 남구 신기촌시장 일대에서 동네잔치가 열렸다. 풍물패가 꽹과리 징 등 사물장단에 맞춰 신기촌시장부터 녹색쉼터공원까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길놀이를 펼쳤다. 남구가 진행하는 ‘주안 미디어 문화축제’(8월 28일∼9월 19일) 프로그램 중 마을극장 21 릴레이의 13번째 행사가 열린 것.

주민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길놀이에 이어 마당극 공연, 동네 영상물 야외상영이 이뤄졌다. 주민 영상동아리가 찍은 8분짜리 영상물은 최근 마을의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영상물에서는 7월 주택 19채를 헐고 들어선 녹색쉼터공원과 지난해 12월 문을 연 시장통 골목 내 대안문화공간 ‘듬’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20m² 남짓한 듬은 40년가량 된 낡은 주택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몇 년째 빈집으로 방치됐다가 지난해 초 한 주민이 사들여 리노베이션을 한 뒤 임대료도 받지 않고 여류 미술가 최바람 씨(43)에게 무상으로 빌려줬다. 최 씨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 주민이 ‘하고 싶은 대로 문화공간을 운영해보라’며 집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운영비까지 후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리는 이 주민은 ‘골목 문화’ 활성화를 위해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듬이 문을 연 후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무인 전시실인 듬에서는 이색 전시회가 수시로 열려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다. 첫 전시회는 정식 개관 전인 지난해 5월에 열렸다. 흙벽돌집을 부분적으로 허물고 방 2칸, 화장실, 부엌을 뜯어낸 바닥을 전시공간으로 삼았다. 개조 과정에서 수거한 옛 라면수프 봉지, 머리핀 등 집주인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전시됐다.

올해 2, 4, 8월에는 미술작가 3명이 첫 개인전을 열었다. 욕망과 결핍의 간극을 이야기한 설치미술가의 ‘날개’, 10대와 20대 시절을 미국에서 지낸 사진작가의 여행지 촬영 작품을 전시한 ‘원더’, 디자이너에서 화가로 변신한 작가의 퍼포먼스전인 ‘불친절한 주변의 노래’가 주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6월 27일엔 시각 위주의 전시회에서 탈피한 소리전시회가 열리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기타, 색소폰 공연을 하던 도중 낮잠을 자던 한 주민이 ‘소음 공해’에 거센 불만을 터뜨려 공연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은 해프닝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날 ‘모킹 버즈’라는 해외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주민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으며 ‘동네 스타’로 떠올랐다. 듬은 8월에 그를 또 한 차례 초청해 동네를 돌며 거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올해 듬 바로 앞에 있던 주택과 슈퍼마켓 등 19채가 사라지고 공원으로 탈바꿈하면서 동네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듬 운영자인 최 씨를 포함한 미술작가 6명은 올해 초 철거될 주택을 돌며 옛 흔적을 수집하고 다녔다. 버려진 화분에서 피어나는 새싹, 못 쓰는 의자, 슈퍼의 유리문 손잡이 등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거나 창작해 공동 기획전을 7월 한 달간 마련했다. ‘소금밭의 라일락’이란 주제의 이 전시회에서는 사진, 설치미술, 회화, 혼합매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최 씨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춤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전시회 관람이 주민들의 낯익은 일상이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듬은 두 집 건너편에 작은 카페를 부속시설로 두고 있다. 032-259-1311, cafe.naver.com/daggdum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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