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민에게 “울산에 박물관을 짓기 위해 앞으로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반대로 울산시민에게 ‘수도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세금 추가 부담 의향’을 묻는다면…. 동의하는 주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을 적게 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우문(愚問)’ 같은 설문조사가 이달 중으로 진행된다. 국립산업기술박물관(국립산박) 건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을 대상으로 ‘경제성 분석’을 위해 실시하는 것.
정부는 지난해 8월 4393억 원을 들여 울산 남구 신정동 울산대공원 일원 23만2112m²에 국립산박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개관은 2020년. KDI는 국립산박의 효용성과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다. 대상은 1000명으로 울산시민이 400명, 나머지 600명은 인구 비율에 따라 전국에 배분된다.
경제성 편익 조사 항목에는 ‘국립산박 건립과 운영을 위해 귀하는 향후 5년간 매년 ( )원의 소득세를 추가로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까?’, ‘국립산박이 울산에 건립되는 것을 찬성합니까?’ 등이 포함된다. 국립산박 유치에 실패한 수도권 등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또 국립산박 건립을 위해 소득세를 추가 부담할 의사가 없거나 적게 내겠다는 답변이 많으면 비용 대 편익(B/C)이 1 이하로 나올 수 있다. 이러면 국립산박 규모가 축소되거나 최악의 경우 건립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KDI가 박물관과 도서관, 생태공원 등 비영리시설의 사업성을 검증할 때 사용하는 ‘조건부 가치측정법(CVM)’으로 국립산박을 조사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예산 낭비요인을 없애는 것은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문조사가 당연히 건립돼야 할 국립산박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 세대에 산업화 성과를 전수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산업기술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는 국가 차원의 산업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대표 시설이 아직 없다. 그래서 ‘한국 산업화의 메카’,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에 국립산박을 건립하려는 것이다.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까지 국가공단에서 내뿜는 온갖 공해를 감수해 온 울산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당시 울산의 대표공약으로 국립산박 울산 건립을 발표했다.
2020년 울산에서 국립산박을 견학한 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석유화학공단 등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산업현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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