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경찰서는 17일 성동세무서 건너편 인도에서 격투 끝에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그는 9일 충남 아산시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A 씨(35·여)를 납치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11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불에 탄 채 세워진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됐다. 당시 A 씨 시신은 복부 등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처럼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김일곤은 성동경찰서로 압송될 때 취재진 앞에서 눈을 부릅뜬 채 강한 어조로 “난 강도한 적이 없다” “난 잘못한 적이 없다”고 외쳤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과거 식자재 배달을 할 때 돈을 주지 않는 여사장들 때문에 여성에게 불만이 많았다”며 “차량과 휴대전화를 훔치려 했을 뿐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며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라며 “한편으로는 불안정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해졌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경찰 관계자도 “흥분 상태라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사실 관계 확인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추적하고 검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경찰의 미숙한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김일곤이 검거된 곳은 A 씨 시신을 실은 차량이 발견된 곳과 같은 성동구다. 범행 뒤 옷을 갈아입은 곳도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로 성동경찰서와 약 130m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김일곤이 최근까지 거주했던 고시원도 성동구에 있다. 그는 검거 직전 성동구의 한 동물병원을 찾아가 흉기로 의료진을 위협하면서 “동물 안락사 약품을 달라”고 요구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동물병원 측 신고가 없었다면 그는 계속 성동구 일대를 활보했을지 모른다.
경찰은 그동안 그가 선불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식으로 수사망을 피해 다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A 씨 시신을 실은 차량을 발견한 지 8시간 만에 김일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그가 검거된 17일까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경기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유사한 범행을 저지르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도 14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기 직전에야 알아차렸다.
경찰은 최근까지도 그가 8월 경기 용인시 지하철 분당선 죽전역을 찾은 점을 들어 이 부근 백화점 및 대형마트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찾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김일곤이 성동구 일대를 활보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과거 동선을 파악하는 데에만 주력한 셈이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경위와 동기 등을 조사한 뒤 18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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