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걷다 서다 반복… 붐비는 한라산 탐방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성판악코스로 탐방객 39% 몰려… 좁은 길에서 부딪혀 사고 위험
관음사코스 2016년 8월까지 통행금지… 남벽분기점 등 다양한 코스 필요

남한 최고봉 한라산 백록담을 찾은 등산객들이 갖고 온 간식을 먹거나 기념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남한 최고봉 한라산 백록담을 찾은 등산객들이 갖고 온 간식을 먹거나 기념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간간이 안개가 끼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20일 한라산 최정상 백록담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분화구 연못의 물이 대부분 말라버린 상황이지만 정상에 도착한 탐방객은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표석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일부는 나무 덱에 드러누워 내리쬐는 햇살을 즐겼다. 남한 최고봉을 올랐다는 뿌듯함도 얼굴에서 묻어났다.

해발 750m 성판악탐방안내소를 출발해 백록담 정상을 밟은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관음사 코스로 가는 길은 ‘출입금지’였다. 5월 관음사 코스에 있는 삼각봉대피소(해발 1500m) 주변에서 발생한 낙석 사고로 백록담 정상∼삼각봉대피소 2.7km 구간의 통행이 막혔기 때문이다. 종전 성판악 코스로 등산한 뒤 관음사 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정상 탐방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였지만 낙석 방지시설이 완료되는 내년 8월까지는 오로지 성판악 코스로 왕복해야 하는 실정이다.

○ 단조로운 탐방로

하산길은 너무 혼잡했다. 교차 교행이 가능한 곳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좁은 코스에서는 오가는 탐방객이 서로 부딪치기 일쑤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정상 탐방 코스가 성판악 코스밖에 없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였다. 성판악 코스 출발점인 안내소 주변 도로는 차량이 2km가량 길게 늘어선다. 주말마다 대형차량과 승용차들이 뒤엉켜 혼잡이 가중되고 있다. 성판악 코스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보강하고 있지만 몰려드는 탐방객을 수용하기에는 버거운 실정이고 쓰레기 발생량도 만만치 않다.

현재 한라산국립공원 주요 탐방로는 어리목(6.8km), 영실(5.8km), 성판악(9.6km), 관음사(8.7km), 돈내코 코스(7.0km) 등이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전체 탐방객 82만5300여 명 가운데 39%인 31만8600여 명이 성판악 코스로 몰렸다. 지난해 한라산을 찾은 탐방객 116만6200여 명 가운데 36%인 41만8200여 명이 성판악 코스를 이용했다. 탐방객 박종원 씨(49·서울 용산구)는 “이번이 3번째 산행인데 관음사 코스가 막혀서 실망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다른 산에 비해 정상을 오르는 탐방로가 단순하다. 민족의 영산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탐방로 보완 코스 필요

제주지역 산악계는 정상 등산의 묘미를 제공하고 탐방객을 분산하기 위해 남벽분기점(해발 1600m)에서 성판악 코스 동릉(해발 1800m)까지 1km가량을 잇는 추가 코스를 제안했다. 이 코스를 통하면 어리목, 영실, 돈내코, 성판악 코스를 연결하며 각각 코스에서 정상 탐방이 가능한 ‘신의 한 수’가 된다. 성판악 코스로 몰리는 탐방객도 분산시킬 수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자문위원 오문필 씨(전 한라산등산학교장)는 “탐방로를 보완하는 코스가 만들어지면 2009년 개장한 뒤 탐방객이 미미한 돈내코 코스 활용도 높아진다. 이 구간은 숲이 없는 현무암 암반지대로 나무 덱을 깔더라도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 탐방로는 1950, 60년대 제주지역 초기 산악인 주도로 처음 만들어졌으며 1970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탐방로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어리목, 영실 코스는 1960년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횡단도로가 생기면서 개설됐다. 한때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던 백록담 서북벽과 남벽은 낙석과 토사 유실 등으로 사실상 등산로 기능을 상실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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