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지난 반세기 동안에 이룬 경제발전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 초고속 압축 성장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압축 성장의 성장통으로 인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에 매우 빠른 속도로 투명사회로 향하고 있다. 또한 투명사회로 가는 성장통 또한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몰라보게 사회가 변하고 있다. 우리 집 둘째 딸아이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손자 녀석에게 우리말도 익히고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겸 미국에서 잠시 돌아와 초등학교에 몇 달을 다니게 하였다. 학교를 마지막으로 가는 날, 딸아이는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선물을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그냥 들고 온 것이다. 우리나라를 떠난 것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학교가 많이도 변하였구나’ 하고 놀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엄청나게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학교에서는 10만 원 이상의 촌지를 받아 적발되면 소위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Strike Out)’, 즉 단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의 박원순법에 의하면 공직자가 단돈 1000원을 받아도 징계를 받게 되는 형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1990년대 교통경찰 생각이 났다. 당시 필자는 운전면허증을 보관할 때 면허증과 함께 5000원짜리 한 장을 넣어두고 다녔다. 그리고 어쩌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면허증 제시를 요청받으면 면허증을 경찰에게 건넸다. 그러면 경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5000원은 꺼내고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조심해 운전하십시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일을 피차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교수사회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황우석 신정아 사건이 촉진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만 해도 논문을 하나 쓰고 나면 다른 학회에서 논문이 모자라니 싣게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면 제목을 살짝 바꾸고 내용을 조금 수정하여 다른 학회지에 수록하곤 하였다. 그리고 영문으로 번역하여 세 편으로 우려먹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두 번 낙선은 우리 젊은이들의 병역에 관한 자세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지인의 아들이 군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주위에서 이구동성으로 ‘네가 앞으로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조언을 하였다.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국회의원도 강하게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한 국회의원은 처남 취직 부탁을 하였다고 문제가 되고 있고 또 다른 의원은 자기 딸 취직 부탁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옛날 같으면 ‘자기 딸 취직시켜 달라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하고 항변할 것이다.
이제 내년 9월부터는 ‘김영란법’이라는 매우 엄격한 법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김영란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을 보면 이 통증이 무서워 피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수산물을 봐주자 하면 저출산 장려를 위하여 유아용품을 봐주자, 또한 서민을 위한 대중음식점 밥값도 봐줘야 한다는 등, 요구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김영란법의 대상자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까지 넣으면서 국회의원 자신을 제외한 것을 보면, 국회의원이라는 분들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집단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김영란법 개정 논의를 한다면 ‘국회의원을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국회의원 사이에서 개진되는 기적을 보고 싶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 투명사회로 향하고 있다. 이 길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견뎌야 하고, 이런 일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가 앞장서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경제성장에서 이룬 성과를 투명성과 공정성에서도 내야 한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무이다. 그리고 살 만한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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