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월요일 저녁이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라”는 어른들 이야기 때문인지 중학생 딸은 선뜻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따라 몸이 아팠던 아내 박모 씨(43)는 일찍 자리에 누웠다.
기계부품 설계 엔지니어였던 남편 홍모 씨(45)는 현장도 종종 누볐기 때문에 먼지투성이인 채로 퇴근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평소에는 남편 일이 끝나는 오후 9시쯤 집 근처 사우나에서 만나 각자 목욕을 한 뒤 집에 돌아오는 것이 부부의 낙이었다. 그날은,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하자 남편은 “곧 집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오후 11시. 전화가 두세 번 연달아 울리자 결국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홍 차장이 쓰러져서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싣고 갔다”고 했다. 뇌출혈로 탈의실에서 쓰러진 남편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사원증을 목욕탕 직원이 발견했다고 했다.
[암운]극심한 두통… CT 찍어봐도 별다른 증상 안 나와
추석을 앞둔 9월 24일 경북 구미시 박 씨의 자택 진열장에는 유독 반짝거리는 상패가 놓여 있었다. ‘위 사람은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맡은 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므로 표창함.’ 남편이 2004년 받은 모범상과 2014년 받은 공로상이었다. 남편은 내년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아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저녁 9시 넘어서 귀가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1997년 남편은 구미의 부품 업체인 D사에 입사했다. 남편은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틈틈이 출근해 제대로 공정이 돌아가는지 점검해야 했다. 공휴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두통이 심해지고 종종 눈이 충혈됐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코를 골기 시작했고 소화불량이 심해진 탓인지 방귀가 자주 나와 아이들이 “아빠는 뿡뿡이”라며 놀렸다. 매사 긍정적이던 홍 씨 입에서 “회사 관두고 싶은데 애들 때문에 다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쓰러지기 이틀 전, 두통과 눈 통증을 참지 못한 남편은 토요일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통증이 심해졌지만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도 별다른 소견이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과로는 눈에 보이는 수치로 나오지 않아 전혀 대비할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절망]週60시간 근무에 45분 부족… 산재연금 못받을수도
남편은 병원으로 실려 간 지 나흘 뒤 세상을 떠났다. 슬픔이 컸지만 생계도 걱정이었다. 19년 6개월간 국민연금을 부었지만 납입 기간이 6개월 모자란다는 이유로 유족연금은 월 21만 원을 받게 됐다. 국민연금공단은 “6개월만 더 부었더라면 월 40만∼50만 원은 받을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유가족은 9월 14일 근로복지공단 구미지사에 신청서를 냈다. 2개월 뒤에 결정이 나는데 산재연금은 ‘받을 수 있느냐’ ‘받을 수 없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유족이 필사적인 이유다. 만약 승인을 받게 된다면 배우자와 자녀 2명인 홍 씨의 가족들은 가장 월급의 62%를 매달 받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설 연휴였다. 산재와 관련한 초과근무를 계산할 때, 법은 재해가 발생한 마지막 3개월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2월 설 연휴 때문에 평균 근무시간이 원래보다 짧아졌다. 그 결과, 홍 씨의 공식적인 1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59시간 15분(근무일수 65일)으로 60시간 기준을 넘지 못하게 됐다. 한창현 공인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의 60시간 기준은 지나치게 엄격해 명절 연휴 직후 사망하면 사실상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1995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근로자의 과로사 신청건수 1만3088건을 분석해보니 2004년까지 70%대를 유지하던 승인율이 2005년 이후로 급격하게 떨어져 2009년 이후에는 30%대에 그쳤다. 특히 2011∼2014년 사이 과로사 인정률은 평균 23.8%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싸늘] “원래 혈압 높지 않았나” 장례 마치자 회사측 돌변
월급이 들어오는 25일은 아빠가 통닭 사오는 날이었다. 밤 10시에나 들어올 아빠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미리 물컵과 포크를 준비하고 ‘띵동’ 소리만 기다렸다.
장례식이 끝나자 회사의 태도는 달라졌다. 홍 씨는 술 담배를 평소 멀리했다. 그러나 “혈압이 원래 좀 높았던 것 아니냐” “사우나에서 쓰러진 것이고 퇴근한 직후”라고 회사 측은 주장했다. 아내는 회사 사람들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장례식 때는 직속상관이 전화만 해도 화를 냈다”면서도 “지난해 회사가 고용노동부의 감사까지 받았을 정도로 다른 팀원들도 과로를 시키고 있다”며 걱정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떠난 후 6개월여 동안 마음까지 부쩍 성장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아빠가 날 정말 많이 사랑해줘서 난 아빠를 이제 떠나보낼 수 있다”고 했고,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아빠가 엄마한테 제일 잘해줘서 엄마가 더 보고 싶을 거예요”라며 씩 웃었다. 힘들지 않은 것처럼.
“애들 더 크면 그때 남편 많이 챙겨주겠다고 다짐했는데, 평생 받을 사랑을 그 사람은 다 주고 가버렸네요.” 아내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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