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여의도 땅밑 ‘비밀의 방’ 40년만에 열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3시 00분


버스환승센터 지하벙커 첫 공개

1일 공개된 서울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내 귀빈실(위 사진)과 내부 전경(아래 사진). 197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용 비밀시설로 보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일 공개된 서울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내 귀빈실(위 사진)과 내부 전경(아래 사진). 197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용 비밀시설로 보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근처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 앞 7, 8m 깊이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자 눈앞에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신라시대 고분(古墳)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른쪽 벽 뒤에는 60여 m² 크기의 별도 공간이 있었다. 한가운데 호랑이 무늬의 1인용과 3인용 소파가 각각 2개씩 놓여 있었다. 이른바 귀빈실이다. 안쪽에는 화장실과 샤워장도 갖춰져 있었다. 맞은편 약 600m² 공간에는 기계실과 화장실, 그리고 지금은 폐쇄된 출입문 2개가 있었다.

197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가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2005년 버스환승센터 공사 과정에서 처음 존재가 확인된 지 10년 만이다. 여의도 벙커의 면적은 793m²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벙커를 만들었는지가 불분명하다. 서울시 어디에도 벙커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벙커 위치가 1977년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하는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용 비밀시설로 추정된다.

10년 전 벙커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이곳을 버스 환승객 편의시설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하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고 지금까지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된 채 폐쇄됐다. 2013년 벙커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실질적인 관리나 활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벙커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자 서울시는 올 3월 현장조사와 구조물 안전 정밀점검을 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시설물 안전에 지장이 없는 ‘C등급’이 나왔고 서울시는 벙커를 역사 속 공간의 하나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선 10일부터 내달 1일까지 토·일요일에 한해 시범적으로 공개된다. 23일 오후 6시까지 지하 비밀벙커 홈페이지(safe.seoul.go.kr)를 통해 사전 예약을 받는다. 현재 벙커에는 벙커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물이 설치됐다. 벙커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는 50cm 크기의 중심부 단면 조각과 발견 당시 사진도 볼 수 있다. 서울시는 환승센터 2번 승강장에 있는 출입구 1곳 외에도 국제금융센터 앞 보도의 출입구 1개를 추가로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벙커 관련 자료나 기록을 찾기 위해 시민들의 제보와 아이디어도 받는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벙커 활용 계획을 마련한 뒤 2016년 10월 전면 개방할 방침이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간이지만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아 잊혀진 곳이기도 하다”며 “역사적 특징을 보존하면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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