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자녀가 태어나면 가족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워킹맘 김모 씨(33) 부부의 경우 자녀가 태어남으로 인해 가족이 흩어져 살게 됐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이 같은 현상은 부모가 자녀 양육을 조부모, 특히 외조부모에게 의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물론 조부모 양육이 최근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영아(만 0∼2세) 및 유아(만 3∼5세)를 둔 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조부모에게 자녀의 양육 지원을 요청한 비율이 2009년 8.0%에서 2012년 9.9%로 증가했다. 특히 영아일 경우 조부모가 육아를 하는 비율이 19.2%나 됐다(2012년 기준). 또 워킹맘의 자녀 중 30%가량은 낮 시간 동안 조부모 등 친인척이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부모가 도움을 주는 형태를 넘어서 자녀의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가 2012년 손주를 양육하는 조부모 3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육아를 이유로 조부모 또는 부모 세대가 이사하는 사례가 다수 나타났다고 한다. 대부분 아들보다는 딸이 부모의 집 근처로 이사하거나 부모가 딸의 집 근처로 옮기는 경우였다. 하지만 김 씨처럼 이사가 힘들 때 딸이나 부모(주로 친정 엄마)가 주중에만 한집에 사는 사례도 많았다.
최 박사는 “육아의 짐이 엄마, 그리고 외조부모에게 더 무겁게 지워지는 건 특별한 현상은 아니지만, 김 씨의 사례처럼 딸이 부모의 집에서 살거나 친정 엄마가 딸의 집에서 살 경우 부담의 정도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며 “이 경우 부부 갈등은 물론이고 모녀 및 장서(장모와 사위) 갈등도 심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도 “김 씨처럼 지나치게 외조부모에 의지해 육아하는 건 아빠의 육아 의무뿐 아니라 권리를 뺏는 일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빠가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녀도 아빠에게서 배워야 하는 남성성이나 남성의 역할 등을 제대로 접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 대부분은 우선 김 씨가 부모의 집에서 나와 세 식구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부모가 자녀 양육을 책임지고 조부모는 도움을 주는 형태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우선 맞벌이 부모가 마음 편하게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어린이집의 공식 운영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하지만 어린이집 상당수는 ‘부모의 합의’라는 명분 아래 오전 9,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4, 6시에 닫는다. 차전경 보건복지부 보육사업기획과장은 “2016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맞춤형 보육을 통해 맞벌이 부모의 자녀 등 어린이집을 길게 이용해야 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육아휴직과 육아기 단축근로제(육아기 부모가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에 급여를 적게 받는 제도)의 정착도 필요하다. 홍 박사는 “일하는 부모가 이 두 제도를 편하게 쓸 수 있다면 일·가정 양립과 부모 중심 육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아이에게는 조부모 전담 육아가 좋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김 씨의 사례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즉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5060세대가 손자녀의 육아를 자청할 경우,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보다도 더 안정적인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아이가 매일 주양육자와 헤어질 수 있다는 ‘분리 불안’을 느끼지 않고 성장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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