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의해 감금되고 성폭행 당해 임신” 케냐 여성 난민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4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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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국적의 여성 A 씨(40)는 2013년 11월 만삭의 몸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홍콩이 최종 도착지였던 A 씨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동행자를 따돌린 뒤 경유지였던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뛰어들었다. 급박하게 보호를 요청하며 난민신청도 했다.

A 씨의 증언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기구했다. 그의 남편은 케냐 키쿠유족 폭력단체인 문기키 조직의 일원으로 2008년 케냐 대통령선거 후 발생한 폭력사태에서 케냐 정권과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증언하려던 중 실종됐다. 키쿠유족 출신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경쟁 후보 라일라 오딩가를 저지하기 위해 문기키 조직을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경쟁 후보 세력 학살이 벌어진 것. 약 1500명이 숨지고 35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는 2008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로 키바키가 대통령, 오딩가가 총리직을 맡는 대연정이 구성되면서 마무리됐다.

연정이 시작되자 국제적 압력을 받은 케냐 정권은 문기키 조직원들을 검거하기 시작했고, A 씨의 남편도 탄압을 두려워하며 조직을 탈퇴했다. 그러나 탈퇴 후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ICC 증언을 앞둔 남편은 2010년 4월 신원 불상의 사람들에게 체포돼 끌려갔다는 목격담만 남긴 채 사라졌다. A 씨는 남편을 찾는 과정에서 문기키 조직원이었다가 그 무렵 실종된 사람들의 아내들을 만나 모임에 속하게 됐지만, 2013년 5월 정부 쪽 사람들에게 체포돼 6개월간 감금당하며 온갖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A 씨가 임신을 하게 되자 정부 측이 A 씨와 태아를 중국에 팔기로 결정했고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던 중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는 A 씨의 진술에 모순점이 있고 신빙성이 없다며 난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 씨는 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하태헌 판사는 “케냐 정부에 불리한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이 있어 박해를 받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며 A 씨에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하 판사는 “동행하던 사람들을 따돌리고 급박하게 난민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기억에 일부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일부 사실이 불일치하더라도 전체적인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하 판사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스토리를 준비하고 일부러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에 탔다가 탈출하는 것처럼 해 난민 신청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오로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박해사유, 탈출경위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무척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 씨의 주장이 일부 모순되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해도 처할 수 있는 박해의 정도를 고려해볼 때 난민으로 보호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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