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쭉정이뿐” 농가 한숨… “샤워도 못할 판” 시민 막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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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최악의 가뭄]제한급수 앞두고 불안한 주민들

들판으로 변한 보령댐 수몰지역 6일 보령호 상류인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의 모습. 원래 물이 가득 차 있던 곳이지만 가뭄으로 마치 푸른 들판처럼 변했다. 왼쪽 파손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과거 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던 다리의 일부다. 보령=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들판으로 변한 보령댐 수몰지역 6일 보령호 상류인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의 모습. 원래 물이 가득 차 있던 곳이지만 가뭄으로 마치 푸른 들판처럼 변했다. 왼쪽 파손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과거 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던 다리의 일부다. 보령=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6일 오전 충남 서산시 서산국민체육센터. 헬스나 요가 수업을 마친 시민들이 땀을 잔뜩 흘린 채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운동을 마치고도 씻을 수가 없어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였다. 시에서 이날부터 샤워장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운영을 멈춘 곳은 샤워장뿐만 아니다. 체육센터 실내수영장도 함께 임시 휴관하기로 했다. 시는 수영장 운영을 중단하는 대신에 회원증을 끊은 이들의 남은 이용 일수를 휴관 기간만큼 자동 연장해 주거나 위약금 없이 환불해 주기로 했다.

시민들 표정에는 불편함이 역력했다. 센터 회원인 이익재 씨(39)는 “지난해 말부터 가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부 농촌지역 이야기이지 시내에서 이런 불편이 발생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 오늘보다 내일이 더 두렵다

충남지역 최악의 가뭄으로 8일부터 서산 당진 보령 서천 청양 홍성 예산 태안 등 8개 시군이 제한급수를 예고하자 이 지역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농업용수뿐 아니라 가정이나 상가에서 사용하는 생활용수까지 제한급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한급수는 물 사용량을 최대한 줄여 어떻게든 버티기 위한 ‘응급처방’일 뿐이다.

중부지역 가뭄의 가장 큰 원인은 올해로 2년 연속 이어진 마른장마가 꼽힌다. 올해 중부지역(대전 세종 충남) 장마철 평균 강수량은 221.4mm로 평년(366.4mm)의 60% 수준. 지난해 장마철 평균 강수량은 145.4mm로 더 적었다. 상당수 태풍이 이 지역에 도달하기 전에 세력이 약해지면서 많은 비를 뿌리지 못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100여 년 만에 찾아온 가장 극심한 가뭄”이라며 “엘니뇨 영향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학계에서 비가 적게 오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6일 오전 서산시청 안전총괄과는 제한급수를 앞두고 시민 불편에 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무실 벽에는 강수량 현황을 알려주는 모니터가 걸려 있었다. 당일과 전날, 시간당 강수량은 모두 0이었다. 이달 들어 서산지역에 내린 비는 단 10mm, 연간 강수량도 490mm에 그쳤다.

“학교 다닐 땐 우리나라 연간 강수량이 1200mm는 된다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모니터를 보세요. 올해도 딱 석 달 남았는데 평년의 절반도 안 왔어요.”

김영중 재난관리팀장은 “막아뒀던 지하수를 다시 쓰려고 수질을 검사하고 아파트마다 반상회를 열어 물을 아끼자고 홍보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의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막상 제한급수가 눈앞에 닥치자 불편함을 호소했다. 서산에 사는 주부 신명자 씨(53)는 “3, 4일 전부터 집의 물줄기가 가늘어졌다”며 “설거지할 땐 다른 수도꼭지에선 물이 나오질 않아 샤워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목욕탕이나 세차장처럼 평소 물을 많이 쓰는 곳은 초비상이다. 서산시 읍내동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최연화 씨(54·여)는 “12년째 영업하고 있는데 제한급수가 목욕탕에도 적용되면 수압이 약해져 옥상 물탱크에 물을 못 채우게 될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물 공급이 어렵지만 일부 시민은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최 씨는 “얼마 전에는 남탕 관리인이 물을 튼 채로 양치를 하는 손님에게 ‘물을 아껴 달라’고 했다가 ‘내 돈 내고 목욕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하는 바람에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농가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서 벼농사를 짓는 배영원 씨(81)는 “6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렇게 심한 가뭄은 처음”이라며 “6월부터 비가 안 와 논이 염해를 입으면서 벼가 다 쭉정이가 되는 바람에 올해는 50∼60가마를 수확하는 평소의 절반밖에 못 건질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충남 ‘젖줄’ 보령호는 황무지로

심각한 가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령호의 수위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보령호는 충남 서북부 지역의 유일한 광역상수원으로 서산 당진 홍성 등 8개 시군에 거주하는 48만 명에게 하루 20만 t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이다.

6일 보령호는 오랜 가뭄으로 조그마한 저수지처럼 바뀌어 있었다. 물 위로 드러난 헐벗은 산등성이는 마치 긴 황토색 띠를 두르고 있는 듯했다. 수문 아래 방류 통로에는 물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상시라면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취수탑 아랫부분까지 고스란히 물 위로 드러나 있었다. 취수탑 벽면을 따라 물이 빠진 흔적이 지층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흔적만이 한때 여기까지 물이 차 있었던 사실을 짐작하게 했다.

보령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 보령권관리단 관계자는 “평균 70m였던 수위가 지금은 59m까지 내려갔다. 제한급수를 하지 않으면 현재 저수량으로는 내년 1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보령댐 저수율은 완공 이후 가장 낮은 22.3%로, 지난해 이맘때(38.9%)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보령호 상류는 아예 물이 말라버렸다. 원래 물이 가득했던 곳은 잡초가 무성한 푸른 들판이나 황무지로 변했다. 옛 도로, 끊어진 다리, 집터 등 17년 전 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던 마을 흔적도 하나둘 유물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들판을 가로질러 몇 km에 걸쳐 뻗어 있는 옛 도로는 당장에라도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보령호 상류인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2리 임호신 이장(55)은 “몇 년 동안 이어진 가뭄 탓에 물이 자꾸 줄어 이 지경이 됐다”며 “지하수로 겨우 식수를 해결하고 있는데 가뭄으로 이마저 고갈돼 버린다면 이 지역 주민들이 과연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산=박창규 kyu@donga.com / 보령=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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